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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외공부를 추방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70년대 들어 땅장사로 10억대의 떼돈을 번 K모씨(52)의 장남 Y군(18·P고3년)은 전과목을 유명강사들에게 개인지도를 받고 있다. 국어·영어·수학 등 세 과목의 과외비는 주3회 수강에 과목당 월30만원씩.
세 강사들에게 나가는 돈만도 월90만원.
물리·화학·생물·지학 등 다른 자잘한 과목에 지출되는 비용까지 합하면 적게 잡아도 월1백50만원은 된다.
음대지망생인 부산K여고3년 J양은 1주일에 한번씩 비행기로 서울을 드나든다. S대음대 G교수에게 「피아노」개인지도를 받기 위해서이다. 10분 정도의 연주를 마치면 지켜보고 있던 교수가 몇 마디 강평을 해준다. 차 마시는 시간까지 불과 30분 남짓한 「레슨」을 받고 J양은 10만원을 내고 같은 날 비행기 편으로 부산집으로 돌아간다. 교통비만도 월10만원 이상이 드는 셈이다.
J양의 아버지 P씨(50)는 「딸이 명문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월「레슨」비 50만원쯤은 차라리 싼 편」이라는 계산이다.
예능계의 「교수과외」는 예능계 대학입학의 지름길.
따라서 비행기·기차·자가용 편으로 서울의 지망대학교수를 찾는 「비행기 통학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70년대의 과외열풍은 왜 일어났는가. 학력이 있어야 출세도, 치부드 할 수 있다는 인식들이 중산층이나 일반서민들 사이에 팽배해있기 때문.
여기에 「무시험진학」에 따른 「학교교육의 불신」이 보태져 입시경쟁의 도장이 학교밖 과외공부의 현장으로 옮겨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40대주부인 L씨는 지난해 봄부터 딸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로 나섰다. 조그만 무역회사의 부장인 남편의 월수30만원으로는 월5만∼6만원의 과외비를 쪼개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딸 셋을 서울에 유학시키고 있는 K씨(51)는 학교선생들이 정상수업보다 과외공부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서울Y여고 2년생인 둘째딸이 겨울방학에 고향으로 돌아오자 담임선생이 장거리시외전화로 과외공부를 받도록 권장, 할 수 없이 딸을 다시 서울로 올려 보냈다는 것이다.
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78학년도 대학신입생의 61.6%가 과외공부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중학생이상을 대상으로 한 과외「그룹」은 서울에만 1만1천여개에 이른다. 동국대 배종근 교수(교육학)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교생 10%, 중학생 20%, 고교생 60%가 과외수업을 받고있으며 이들이 쓰는 과외비는(국민교 5천원, 중학 1만원, 고교 2만원 기준) 연간 2천5백억원에 이른다.
이같이 학교교육체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과외공부를 없앨 수는 없을까.
현행 입시제도, 학교수업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과외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일선교사·학부모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 사례들과 움직임이 교육일선에서 서서히 일고있다.
고교평준화 후 새로운 명문고로 등장한 서울시내 D고교는 학생들에게 무지각·무조퇴·무결석의 3무 운동을, 교사들에겐 「무결강운동」을 벌이는 등 교육의 현장을 학교내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학생들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교사들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친다면 자연히 학교교육을 믿게되고 과외공부는 자연히 수그러들게 된다』는 것이 민병독 교무주임의 말이다.
서울시내 S고교의 고3담임 김모교사는 『우수한 학생들의 60%이상이 순수하게 학교공부에만 의존하고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우리학교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다.
고려대심리학과의 김성태 교수는 과외의존풍조를 사회적 성숙도의 면에서 보고있다. 『자기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는 성숙된 사회적 풍조가 아쉽다. 유치원시절부터 사회에 나올 때까지 계속 과외를 통한 타율적 지식주입만 받고 큰 사람들의 경우 자주 자립성 등 인격적 성숙도가 부족하게된다.
이는 다음세대에서 큰 사회문제로 등장할 수도 있다. 김교수는 혼자 힘으로 「리포트」하나 못쓰는 대학생, 고시공부도 과외를 하는 법대생도 있다고 개탄한다. 배종근 교수는 일그러진 교육풍토를 바로 잡으려면 학벌주의의 사회풍토가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졸정도의 중급 인력이 진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수강할 수 있는 야간기능대학의 설치, 대도시 정규대학에 야간반을 두는 「오픈·유니버시티」제도의 도입 등 인력의 수요와 양성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배교수의 제안이다.<끝>
【정춘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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