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강' 오십천이 살아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강물이 언제 이렇게 변했지. 이런 빛깔이 아니었는데….”

지난 6일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의 ‘영덕대게 거리’를 찾은 정미경(37·여·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씨는 달라진 오십천(五十川)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2년 전 이맘때 왔을 때만 해도 새카맣게 오염됐던 오십천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름다운 강 하구의 모습을 보니 대게 맛도 더 좋아진 것 같다”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감탄했다.

미식가의 관광명소인 ‘영덕대게 거리’를 휘감아 흐르는 오십천의 하구와 맞닿은 항구에는 수십척의 어선들이 넘실대는 푸른 물결에 흔들린다. 상큼한 갯내음이 코끝으로 스며든다. 강가에는 고운 모래밭이 펼쳐져 그림 같은 항구의 모습이 봄 정취를 더한다.

불과 2년 전만해도 오십천은 ‘죽음의 강’으로 불리었다.

1980년대 들어 수산물 가공공장의 폐수와 생활하수가 쏟아지면서 심하게 오염됐던 탓이다.

대게 철인 12월부터 다음해 5월 사이 주말이나 휴일엔 오십천 하구를 따라 8백여m 구간에 늘어선 3백여개의 대게 식당에 2만∼3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몰리지만 과거엔 찾는 이들마다 오염된 강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고 코를 움켜줘야 했다.

식당가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은 온통 먹물을 풀어 놓은 듯 시커멓고, 역한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던 것이다. 강가엔 쓰레기가 널려 있고, 여름철만 되면 죽은 물고기들이 떠올라 관광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요즘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낭만이 넘치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식도락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오십천이 되살아나게 된 데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공이 컸다.

“강을 살리지 않으면 관광산업도 없다”는 인식 아래 96년 6백여 명이 ‘그린영덕21’이란 환경단체를 만들어 생활하수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하천의 쓰레기를 줍는 등 환경운동에 나선 게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영덕군도 호응해 중앙 정부에서 3백80여억원을 확보, 2001년 9월 하루 1만3천t 처리용량의 하수처리장 가동에 들어가고, 상류지역의 오염된 퇴적물도 긁어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오염물질의 유입량이 크게 줄자 수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2년 전만 해도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26.9ppm에 이르러 농사조차 지을 수 없었던 강물의 오염도는 최근 6∼8ppm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마침내 70년대의 옛 모습을 찾게 된 것이다.

부산에서 왔다는 50대 남자는 “강물이 엄청나게 깨끗해진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맑은 강물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며 반겼다.

이 곳에서 7년째 대게 도매를 하고 있는 박귀숙(40)씨는 “영덕대게를 찾는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릴 때마다 민망했던 오십천이 이젠 대게와 함께 강구의 자랑거리가 됐다”며 뿌듯해 했다.

물이 깨끗해지면서 개체수가 크게 줄었던 은어가 떼지어 노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민물털게도 나타났다. 주민들은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은어 요리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박재훈(46)씨는 “줄어가기만 해도 은어·민물털게가 지난해 이후 늘어나기 시작해 옛 강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덕군의 임성장(49)환경보호담당은 “강 하구에 산소공급 시설을 추가 설치하는 등 수질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해 오십천을 영덕대게 만큼 유명한 관광명소로 바꿔 놓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오십천=포항시 죽장면·청송군 부동면 등이 발원지로 영덕군 달산면에서 합쳐져 강구항으로 흘러드는 길이 40㎞, 너비 1백50∼2백50m의 강이다. 50개의 지류가 모여 강을 이룬다는 뜻으로 ‘쉰내’라고도 불린다. 신라시대부터 왕에게 진상했던 은어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오십천=영덕대게 거리’를 떠올릴 정도로 대게 관광명소가 됐다.

영덕=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