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서비스」정신 부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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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됐지 사람은 짐짝 취급을 하다니…』-. 지난해 11월27일 상오0시20분. 서울강남구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 통금에 묶여 집을 갈 수 없게 된 60여명의 승객들은 울화통이 터졌다.
예정시각보다 2시간여나 늦게 도착했는데도 C고속 측은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승객들만 발을 동동 굴렀다.
『학교 가는 것이 반쯤은 「버스」타기에 달려있다』는 성신여중의 이정선양(15). 『사람대접 받을 생각은 커녕 안내양한테 핀잔 안 받으면 다행』이라고 푸념이다.
S상사 직원 김성렬씨(32)는 『약속 때문에 급히 탄 「택시」가 「버스」보다도 늦어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고 씁쓸해했다.
김씨를 태운 「택시」운전사가 합승손님을 태우려고 길가에 서있는 사람들 앞에 정차, 행선지 묻기를 10차례, 결국 2명의 합승손님을 태우고도 「재수 없는 날」이라고 눈살까지 찌푸렸다.
구로역에서 전철을 내린 이영숙양(23·서울영등포구구로동274)은 개찰구를 3개씩이나 두고도 겨우 하나 만을 열어 놓은 채 집표원 1명이 표를 받고있어 큰 불편을 겪었다. 5분 동안 이리저리 밀리며 빠져나오느라 이양의 구두는 밟혀 흙투성이가 됐다.
D제약 양해준씨(38)는 점심시간이 두렵다.
인근 「빌딩」가에서 밀어닥치는 손님들 때문에 혼자서 점심주문을 하면 대꾸도 않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주문음식이 안 된다는 핑계로 내쫓기까지 한다.
음식점뿐 아니라 술집·다방 등 접객업소의 냉대에 고객들은 익숙해져있다.
회사원 이창규씨(34)는 구랍 24일 「크리스머스·이브」에 기분 좋게 마신 술이 확 깨버렸다. 5천원을 「팁」으로 받아든 아가씨가 『짜다』고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1만원을 빼앗긴 후 간신히 나올 수가 있었다.
관공서의 민원창구도 「서비스」를 외면하기 일쑤. 지난 연말 취득세 신고를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발부받으러 동회에 들른 윤성희씨(37·여·서울관악구)는 창구 직원의 늑장에 분통이 터졌다.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몰려든 1백여명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동직원 3명은 농담을 나누며 마냥 늑장을 부렸다.
주민등록등본 한 통 떼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 윤씨는 3만원을 대서소에 맡기면 가만히 앉아서 하루만에 등기이전·취득세신고를 마칠 수 있다는 비법을 이웃주민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우리주변의 일상에 아무런 저항 없이 만연된 「서비스」부재.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 장마운수 안내양 이덕희양(19)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격무로 우리를 지치게 한 후 얼굴에 웃음을 띄우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항변한다.
「버스」운전사 최호천씨(45)도 『1회라도 더 연장 운행하라는 차주의 성화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구잡이 운전을 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 같은 「서비스」부재 속에서도 개선노력은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내「버스」운수조합은 「버스」안내방송으로 음악이 곁들여진 녹음「테이프」를 사용, 차내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하고있다.
부산시내「버스」조합은 안내양기숙사에 중·고등학교 과정인 강습소를 설치, 안내양 자질향상에 힘쓰고있다.
개인「택시」운전사들은 비번 날이면 자진해서 정류장 질서잡기·가두교통「캠페인」 등에 앞장선다.
서울영등포구청의 경우 노약자창구를 마련, 노약자는 우선적으로 민원을 처리하여 불편을 덜어주기에 노력하고 있다.
서울시내 구청에는 휴일·야간에도 민원을 처리하고 전화민원도 접수, 생업에 바쁜 시민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제공을 모색하고 있다.
강서구청에는 이혼상담창구까지 두고 이혼신고 하려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한해동안 30여명이 이혼신고를 하려다 스스로 포기, 재결합을 했다.
박동언 교수(성대교통학회장)는 대중교통수단의 「서비스」개선에 대해 『금융·세제(세제)지원 등을 통해 「버스」업체의 재정력을 향상시킨 후 「서비스」대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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