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안개를 낚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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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내1‥(큰 소리로)여보 형씨, 글쎄말이요, 내 낚시대에는 얼마나 큰 붕어가 울렸었는지 낚시대가….(낚시대회 끌어 올린다.)
사내2‥큰 놈이 물렸어요?
사내l‥낚시대가 넘어져 있다니까요. 얼마나 큰 붕어가 물렸었는지.
사내2∵낚시대가 넘어진건 현씨가 발로 차서 그리된것 아뇨? 방금 나에게로 오면서.
사내1‥그랬던가요? 낚시대를 발로 차다니, 붕어가 알았으면 웃었겠군. 허허허….(사내1, 2 잠시동안 낚시에 열중한다. 여자, 낚시를 끌어당겨 미끼를 달아 다시던진다.)
사내2‥ (안개를 헤치며) 그만 안개가 걷힐때도 되었는데.
사내1‥안개요?
사내2‥안개말이요.
사내l‥아하, 이제 알겠다.
사내2‥무엇을?
사내l‥왜 지금까지 한 마리의 붕어도 물지 않는가를요.
사내2‥왜 안물었을 까요?
사내1‥그것은.
사내2‥그것은?
사내1‥안개때문이요.
사내2‥안개때문?
사내1‥그럴 수 밖에요. 안개가 끼어 있으니.
사내2‥그렇군요, 찌를 볼수가 없지요.
사내l‥찌가 보이지 않아요? 그럼 형씨는 지금까지 찌를 보지않았단 말인가요?
사내2‥찌가 안보일 정도는 아닌데.
사내1‥찌가 보이니까 낚시질을 했었지요.
사내2‥붕어는 왜 물지 않았을까요?
사내l‥그것은……즉, 붕어가 낚시를 볼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사내2‥그럼 어떻게 알고 밥은 따먹죠?
사내l‥미끼는 보여도 낚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는게 아닐까요?
사내2‥에이, 여보시오. 붕어가 낚시를 보고 그게 저잡을 낚시인 줄 알면 더욱더 물지 않을게 아니요.
사내1‥아니지요.
사내2‥아니면?
사내1‥붕어가 말입니다, 그게 저를 잡으려고 늘여논 낚시인 줄 알면 호기심에서 한번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어떻게 되나 하고….
사내2‥어떻게 되나 하고?
사내1‥일테면 붕어의 모험심이라고나 할까요. 거 왜 사람도 그렇지 않아요? 차가 억수로 다니는 도로 한복판에 서보고 싶어지는 심리랄까? 그런거 있지 않아요, 도둑이 드나 안드나 보려고 문을열어놓고 자보기도 하는….
사내2‥그렇다고는 해도 꼭 그래서 붕어가 물지 않을까요?
사내1‥그것도 아니면 형씨, 안개가 끼면 왜 붕어가 물지 않을까요?
사내2‥글쎄요.
사내1‥물속에도 안개가 낄까요?
사내2‥물속에 안개가?
사내l‥물속에 안개가 끼는지 안끼는지 우리는 그것도 정확히 모르지 않아요. 붕어가 물었으면 얼마나 웃었을 까요?
사내2‥붕어가 웃어요? 형씨, 붕어가 웃는것 보았소?
사내1‥형씨는 붕어가 웃는걸 보았소?
사내2‥붕어가 어떻게 웃어요?
사내1‥형씨도 못보았군요. 사실은 나드 못 보았어요.
사내2‥그렇지요. 붕어는 웃을 수가 없지요. 하하하……붕어가 들었으면 또 한번웃었겠군……하하하.
사내1‥허허허…… (사이) ……형씨와 나는 처음으로 함께 웃었군요.
(사내1·2,한바탕 유쾌하게 웃는다회여자 고개를 돌어 사내1·2를 번갈아본다.)
사내1‥아, 유쾌하다. 형씨 우리 좋은 기분으로 소주 한잔 합시다.
사내2‥소주 좋지요.
(사내1, 자기 자리로 돌아 온다. 사내l·2 자기들의 낚시가방에서 소주병·쥐포·컵을 꺼내들고 사내1은 사내2를향해, 사내2는 사내1을 향해 다가오다가 여자의 뒤에서 만난다.)
사내1‥이 자리가 좋겠군요.
사내2‥그럽시다. 이곳에서 한잔 합시다.
(사내1·2 자리를 잡고 앉는다. 여자 하품을 한다. 사내1·2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씽긋 웃는다.)
사내1‥이봐요, 아가씨. 같이 한잔 합시다.
사내2‥그럽시다. 낚시질도 쉬었다해야지. 눈빠지게 기다린다고 해서 없는 붕어가 잡힐리도 없고…. 돌아 앉으시오.
(여자, 사내둘을 향해 돌아 앉는다. 사내l·2, 동시에 소주를 따라 여자에게 권한다.)
사내1‥ 드셔요.
사내2‥쭉 들어요.
여자‥(씽긋 웃으며)먼저들 드셔요.
사내1‥그래야겠군요.
사내2‥술은 아무래도 남자가 먼저 들어야지.
(사내l·2, 마신 다음 소주를 따라 여자에게 권한다.)
여자‥(사내1·2를 번갈아 쳐다보며)어느 술잔을 먼저 받느냐의 선택권은 나한테 있지요? 그렇지만 난 아주 공평하다구요. 이렇게 이쪽 술잔은 오른 손이(사내2의 술잔을 받아 마신다. 잔올돌려주며)마시고, 이쪽 술잔은 왼쪽 손이 (사내1의 술잔을 받아 마신다. 잔을 돌려주며) 마시거든요.
사내l‥(사내2에게 술잔을 권한다)참.
얼마나 유쾌한 애기요. 안개 속에서….
사내2‥(술잔을 받으며) 안개 속에서?
사내l‥소주를 들고 있는 세사람의 낚시꾼.
사내2‥세사람의 낚시꾼? 꼭 소설의 제목같군요.
여자‥어마. 멋있어라. 나는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사내l‥형씨는 소설을 믿소?
사내2‥소설을 있을 수 있는 애기를 써놓은 것 아니요?
여자‥그래요. 소설에는 실감나는 애기들이 얼마나 많다구요.
사내1‥거, 모르는 소리. (소주를 병째 몇모금 마신다)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얘기를 써놓은 건 사실이지만 있는애기는 못쓴단 말요.
사내2‥있는 얘기는 못쓴다?
사내l‥그렇지 않소? 지금 우리들은 낚시질을 와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것아뇨? 그것도 안개 속에서.
사내2‥그렇지요.
사내1‥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지금 이순간…이순간에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가?(사내2와 여자 긴장한다.)
사내2‥누군가가?
여자‥누군가가?
사내1‥등뒤에서 올가미로 우리의 목을 매달아….
사내2‥목을 매달아?
여자‥목올 매달아?
사내1‥저 호수 한가운데로 던져버린다고 생각해 봐요.
여자‥어마, 무서워라. (자기 목을 조이는 시늉.)
사내1‥누가 그걸 얘기로 써주지요? 봐요.
지금도 우리를 노리고 있잖아요. 뒤에서….(사내2와 여자 동시에 뒤를 돌아본다. 대형차량이 급정거 하는 소리. 두사람 깜짝 놀란다.)
사내2‥아무도 없지 않소?
여자‥아무도 없네요.
사내l‥ (싱겁게)없을 수 밖에요. 그놈은 실상은 보이지가 않거든요.
사내2‥ 그놈이라면?
사내1‥우리를 느리고 있는 놈.
사내2‥그러니까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기는 있군요. 우리가 붕어를 노리듯이.
사내l‥이제야 형씨가 옳은 소리를 하는군요. (유쾌하게) 확실히 술은 맛이 변하지 않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니까요. 자 한잔…(사내2에게 술을 권한다. 사내2가 술을 마시는 사이, 심각해진다.)나는 그놈을 보았어요.
사내2‥(잔을 내려놓으며)그놈을 보았어요?
여자‥어떻게 생겼어요? 무섭게 생겼겠죠?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지고 눈엔 핏발이 서있겠죠?
사내1‥그놈은 내 어머니를 노렸소.
사내2‥형씨의 어머니를?
사내1‥나는 분명히 보았어요. 문구멍을 통해서.
사내2‥문구멍을 통해서?
사내1‥우리 아버지 아닌 놈이.
사내2‥형씨의 아버지 아닌 사람이?
사내l‥내 어머니를 깔아뭉개고 배위에 올라타는 것을.
여자‥어머머, 멋있어라. 우리 그이도 그랬어요.
사내2‥깔아뭉개고 배위에? 아니, 그것은 강간이라는 것 아니요?
사내l‥(담담하게)간통이었는지드모르지요.
여자‥서로 좋아서 한 것인걸요.
사내2‥형씨의 어머니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 있었나요?
사내l‥형씨는 내 어머니를 모독하고 있군요.
사내2‥모독이라니요?
사내l‥그렇지 않아요? 형씨는 내 어머니를 아주 부정한 여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뇨. 강간을 당하고도 이 세상에 살아있을 것 같은.
사내2‥형씨의 어머니는 죽었군요.
사내1‥(힘없이)죽었어요. 그것도 목매달아 죽었어요. (일어선다) 그런데 이렇게 대롱대롱(매달리는 시늉)매달려 죽은것이 아니라 새끼줄을 목에 감고 땅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더라니까요.
사내2‥누군가 새끼줄로 목을 죄어 죽였군요. 그놈이었읍니까?
사내l‥그게 아니라.
사내2‥그게 아니라면?
사내1‥대롱대롱 (매달리는 시늉) 매달려 있는 도중에 새끼줄이 끊어져 버린거죠 .(엉덤방아를 찐다)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스스로 택한 목매용 새끼줄은 튼튼하지가 못했어요. 그때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사내2‥아파요? 형씨의 어머니는 이미 죽어있을 때인데.
사내1‥아니, 형씨는 죽은 사람은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일어선다.)
사내2‥죽은 사람이 아픔을 느낄리가 없지요.
사내l‥형씨는 매정한 사람이군요. 죽은 사람은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니.
(사내1 사내2의 귀 가까이 대고 은밀한 목소리로.)
사내1‥내 아버지는 말이요.
사내2‥형씨의 아버지? 아, 아내를 강간당한 못난….
사내1‥여보시요! 못난이라니? 비록 내어머니를 강간당하기는 했지만 못난이는아니었소. 다만…위장병 환자일 뿐이요.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는.
사내2‥위장병 환자라…내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사내1‥형씨의 아버지는 아니라고? 아하, 이제 알겠다.
사내2‥알다니? 무얼?
사내1‥내 어머니룰 강간한 놈을.
사내2‥그놈을 알았어요? 그런 놈을 그냥 둬요? 그래 그놈이 어떤 놈이지요?
사내1‥그게 어떤 놈이냐고? 이 뻔뻔스런…. (사내2의 멱살을 잡는다.)
사내2‥(영문을 몰라)이게 무슨 짓이요?
사내1‥내 어머니를 강간한 놈이 바로 당신의 아버지란 말요.
사내2‥내 아버지라니, 당신 지금 정신이 있소?
사내1‥자세히 보니 당신의 얼굴도 비슷해, 그놈과… 나는 알 수 있어. 당신의 아버지는 위장병 환자가 아니라고했지? 그래서 잘 웃겠구만, 내 아버지가 속이 쓰려 끙끙 앓고 있을 때…내 어머니를 깔아 뭉갠, 내 어머니를 목매달게 한…그놈도 위장병 환자는 아니었어.
(사내1은 사내2의 멱살을 잡고, 사내2는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사내1을 올려다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여자, 혼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사이, 고속도로의 차가 스쳐가는 소음 크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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