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978년을 보내면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978년을 보낸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한해를 마감하는 심정은 착잡하고 감개 깊다.
후회스러운 것,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는가 하면, 흐뭇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일 또한 없지 않다.
무언가 결산과 정리, 판단과 성찰이 있어야할 시점이다.
우선 1978년의 세태를 수놓았던 몇 가지 주요사실들에 주목해보자.
KAL기 사건에, 50년래의 대 한발, 각종 「스캔들」과 폭발사고·교통사고들.
꽃 같은 어린이들이 돈에 눈이 뒤집힌 어른들에게 죽음을 당한 일들. 고적하고 버림받은 노인들이 세상을 비관하여 투신자살한 충격들.
날마다 날마다 치솟는 물가고와 가계부의 휘청거림.
이런 「잊고싶은 일들」에서 우리는 그 어떤 교훈의 자료를 얻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의 모습은 갈수록 대형화하고 기계화되고 풍성해지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대응태세는 아무래도 부족하고 서투르다.
자동차나 LP「가스」를 척척 사들여 이용할 줄들은 알면서도 그것이 흉기화 하지 않게 하는 「배려와 기술」은 수준미달이다.
수입과 소비의 즐거움은 커졌는데 『사람의 도의상 어찌 그런 일이야 차마 할 수 있겠느냐』는 염치는 줄어들었다.
도회지와 공장의 덩어리는 갈수록 커지는데 사람들의 마음씨는 자꾸만 거칠어지고 각박해져 간다.
「물량증대와 의식수준의 괴리」, 「산업화 속에서의 인정과 예의 결핍」―이런 것들이 이를테면 78년 세모의 성찰의 대상이다.
그러나 78년이 온통 우울한 일들로만 꽉찬 한해였나 하면 그렇진 않다.
혹독한 가뭄을 이겨낸 국민적 패기, 회신된 이리를 「이리의 기적」으로 소생시킨 관민의 개가, 북극의 빙원에 태극기를 꽂아놓은 한국인의 투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일 듯 일었던 이웃돕기운동의 열기, 이런 성취와 미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송년회고는 결코 실망으로만 연결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열심히 일하고 건전하게 생각해왔다.
또 대부분의 지도층 인사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성취해왔다.
이런 긍정적인 요소들이 건재하는 한 다가오는 새해는 「보다 나은 한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각자는 우선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삶의 자세」부터 가다듬어볼 일이다.
잘 살아보기 위해선 무슨 것이든 다해도 괜찮다는 생각보다는, 사람으로서 할 짓 있고 못할 짓 있다는 겸손함과 두려움을 더 느껴보자.
배타적인 승부의식 못지 않게 화해와 협동이 얼마나 더 서로를 위해 유익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이런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인간다운 인식태도」를 튼튼히 다져놓은 연후에 78년이 넘겨준 내외의 숙제들을 챙겨야 하겠다.
연말의 정치에서 우리는 심기일전의 「모먼트」를 이룩했다. 이 전기가보다 「화기로운 정치풍토」 조성으로 증폭되도록 모든 지도층과 국민이 힘써야 하겠다.
78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나라의 전체적인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가계와 복지·교육 등 지금까지 다소 뒷전에 있던 영역에 까지 투자와 보살핌이 보다 많이 돌아갔으면 한다. 물가가 그만 뛰어야하고, 지체 부자유아나 버림받은 노인이 좀 더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야겠다.
콩나물 교실도 넓어져야겠고 일반인·근로자·여성에 대한 평생교육·사회교육도 강화돼야겠다.
이런 투자는 결코 낭비나 과용이 아니다. 사회의 경제구조가 고도화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의식과 기술도 그에 맞게끔 따라가야만 하겠기 때문이다.
한미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앞으로는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더욱 따뜻한 이해가 증진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미국을 좋은 우방으로 신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한국의 「우방됨」을 필요로 하는 처지다. 이런 공통이해와 선의가 있는 한 지난 이태 동안의 씁쓸한 일들일랑 금년세모를 고비로 깨끗이 털어 버리고 지나가자.
78년 한해동안 한반도 주위의 국제정세도 적잖이 바뀌었다. 미국·일본·중공이 한편이 되고, 중공·소련·「베트남」·「캄보디아」가 서로 적이 돼서 싸우고 있다.
이런 기묘한 정세변화가 한국에 대해 과연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 아직 확실한 판가름이 나지 않은 채 78년은 저물어가고 있다. 참으로 불투명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한가지 확실한 믿음이 있다. 주변정세가 어찌 돌아가든, 자기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일하여 「양질의 능력」만 길러 놓으면 뭐 별로 염려할 것이 없지 않겠느냔 것이다.
정리할 것이 있으면 정리하고 풀을 것이 있으면 풀어가면서, 경건한 정관으로 78년의 제야를 맞이하자.
오늘을 함께 사는 모든 벗들에게 송년 인사를 보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