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티즌' 날뛴다… 맘에 안드는 개인·회사 사이버 '벌떼 비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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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의 한 대학 음대에 다니는 李모(여)씨는 지난 7일 어느 오디오 동호회 사이트에 자신의 아버지가 갖고 있는 오디오를 소개하며 동호인들에게 기기 수준을 평가해 달라는 취지의 글을 띄웠다가 낭패를 당했다.

한 네티즌이 글의 문장을 문제삼아 "중1 일기장을 보는 것 같다. 요즘 대학생의 글 솜씨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글을 올리면서 모욕적인 글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대생.체대생이 글을 못 쓰는 것은 당연하다' '예체능계의 수능 평균은 인문계열보다 30~40점이 떨어진다'는 등 사실 검증 없는 글들이 쏟아졌다.

李씨는 "글 하나 올렸다가 왜 이런 언어폭력에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허탈해했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 회사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사이버 공격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서울 강남의 S교회는 몇달 전 홈페이지 게시판을 폐쇄했다가 최근에야 다시 열었다. 발단은 엉뚱하게도 지난해 9월 서울 코엑스몰의 한 안경점에서 발생한 고객과 종업원간의 언쟁에서 비롯됐다.

고객은 안경점 주인인 金모씨가 자신이 아닌 종업원의 편을 들었다며 각 사이트에 金씨를 공격하는 글을 올리면서 金씨가 집사로 있는 S교회 홈페이지를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이에 동조한 네티즌들이 잇따라 이 교회 홈페이지에 몰려 들어 서버를 다운시켰다. 金씨는 "교회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기 어려웠고 영업에도 타격을 받았다. 벌떼같은 네티즌들의 공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물론 인터넷은 소비자 운동 활성화나 참여 민주주의 확대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초등학교 교장 자살 사건처럼 지나친 여론몰이식 공격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이 난무하면서 개인이나 단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경찰의 사이버 명예훼손사범 적발 건수는 2천7백62건으로 2001년에 비해 83%나 늘었다.

지난해 말 한 이화여대생은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했다가, 한 서울대생은 과외비 담합을 주장했다가 일부 네티즌이 이들의 집 전화와 주소까지 공개하며 비난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유명인들은 다반사로 사이버 명예훼손을 당하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인신공격적인 글이 쇄도하자 최근 홈페이지 방명록을 폐쇄했다. 지난해 탤런트 박신양씨와 방송인 이종환씨도 사이버 공격에 시달렸다.

업체들의 피해도 잇따라 한 분유업체는 최근 자사 제품에 불순물이 들어있다는 익명의 글이 각 육아 사이트에 무차별 유포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윤창희.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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