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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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석가는 도를 이룬 뒤 27일 만에 법계 평등의 진리를 깨 말아 불의 만행·만 덕을 밝혔다. 그 행과 덕을 닦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을 불교에선 화엄이라고 말한다.
화엄경은 바로 그것을 칭양한 경문이다. 일명 「대방 광불 화엄경」이라고도 한다.「대방광」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라는 뜻으로 그 이치는 방정하고 광대한 것이므로 이렇게 말한다. 불교에선 이것을 가장 높은 경전으로 친다.
화엄경 가운데는 동진(중국의 진조)의 불타발타라역이 60권, 당의 실차난타역 80권, 반야 역 40권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새 국보로 지정된「신라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우선 그 고 미술적인 가치에 앞서 종교적으로도 얼마나 값있는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연대가 뚜렷이 밝혀져 있는 이 국보는 그 제작과정부터 감동적이다. 발문에 명기된 바로는 사뭇 장엄한 의식까지 곁들여져 있다.
종이를 만들 때는 닥나무(저)에 향수를 뿌렸다고 한다. 사경의 지묵이 완성되고 나서는 청의를 입은 동자들이 꽃을 뿌리면서 그 꽃길을 밟으며 이것을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의식이 이루어지는 동안엔 옆에서 아악이 울려 퍼졌다. 얼마나 장려한 의식이었을 지 1천2백여 년 전의 일이 눈에 선하다.
이 사경이 만들어진 경덕왕(재위 742∼765) 시대는 신라 문화의 황금기였다. 왕은 특히 불교 중흥에 힘을 기울여 황룡의 종을 만들고 그밖에도 많은 절을 세웠다. 당나라와도 친교가 두터워 그 영향도 고루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지묵서 화엄경」은 그 시대의 문화적인 정수를 함축한 최대의 걸작품일 것이다. 발문에 따르면 무려 2년이나 걸려 만들었다고 한다.
이 경문의 발원 자는 연기법사로 밝혀져 있다. 그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고승이다. 전남 구례의 화엄사도 그가 창건했었다.
사경 사업은 흔히 고려시대에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유물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이전은 전무한 상태였다.
이번에 국보로 보존하게 된 이 경문은 새삼 신라의 문화 수준을 돋보이게 한다.
표지 그림에 등장하는 역사의 상은 팔·다리가 우람하고 용맹스러워 보인다.「문화」란 그 사회의 활기찬 분위기에서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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