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속 빈곤층' 시대, '퍼주기'가 자식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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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의 노·장년 부모 세대는 ‘낀 세대’다. 그들은 유교적 가치에 따라 자신의 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또 그런 관행에 따라 자식 세대에게 교육·재산증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강해진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본지는 탐사기획 보도(6월 17일자 1, 3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도 자녀에게 버림받는 상속빈곤층을 집중 조명했다. 시대 변화의 틈에서 ‘신(新) 고려장’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본지는 최근 7년간 선고된 부양료 청구사건의 판결문 226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건 중 3건꼴로 상속빈곤층이 제기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증여·상속을 통해 재산을 미리 나눠줬지만 자식이 부양을 거부해 할 수 없이 법원에 부양료를 받아달라고 요청한 경우였다. 그들의 월 생활비는 34만원에 불과했고, 거의 대부분이 노령연금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법정의 모습은 우리를 더 씁쓸하게 한다. 소송을 당한 자식 중 상당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OOO씨라고 호칭한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따지는 과정에서 자식과 부모 사이에 증오가 쌓이고, 부모 편을 드는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 사이에 갈등이 생겨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린 자식에게는 법적·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미래세대에 대한 인성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패륜’ 자식은 소수일 것이다. 크게 보면 부모 세대가 시대에 맞게 인식·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자식 세대가 자신과 다른 사회적·경제적 환경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 차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 자신의 노후를 감안하지 않고 과도하게 교육·결혼 지원을 해주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퍼주기’가 자식을 망치고 사회공동체를 병들게 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가는 자식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 부모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