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국의 「콜룸부스」들 (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캘러헌」 영국 수상은 「아프리카」 사태 파악에서 보인 미국인의 미숙성을 꼬집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는 오래 전부터 거기 있어온 대륙인데 요즘 미국의 「콜룸부스」들이 매일같이 「아프리카」 발견 길에 나서고 있다』
문맥은 물론 다르겠지만 요즘 한국의 「콜룸부스」들도 상당수가 「아프리카」발견 길에 나서고 있다.
기자가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도 「라고스」와 「나이로비」에서는 한국이 참여한 무역 박람회가 열려 대표단이 와 있었고 다른 「아프리카」의 주요 도시에도 갓 파견된 한국 상사 대표들이 4, 5명씩은 으례 주재하고 있었다.
「반줄」「나쿠루」「티아살」과 같은 생소한 이름의 오지에서는 이미 7, 8년 전에 파견되어온 한국 의사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비극적인 예로는 「아비장」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공동 묘지에 27기의 한국 어부들의 묘지가 비도 없이 열대의 뙤약볕 아래 쓸쓸히 누워 있어 숙연한 감회를 자아내게 했다.
맨 먼저 길을 닦은 외교관, 그리고 무소 부재한 듯한 태권도 교관과 원양 어선의 선원 등 모두 합치면 이제 「블랙·아프리카」에 가 있는 한국인의 수는 3백∼4백명을 넘어선 듯하다. 어느 사이 「아프리카」는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륙이 되어 있다.
월남, 중동 다음으로 「아프리카」가 한국인의 국세 팽창의 다음 무대가 될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한국으로부터의 접근 속도가 가속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캘러헌」이 말했듯이 「아프리카」는 한국의 「콜룸부스」들이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는 대륙은 아니다. 이미 「유럽」과의 관계에서 한시대가 지나갔고 신생국 시대도 중반에 접어들어 그들대로의 질서가 자리 잡혀가고 있다.
단순화시켜서 볼 때 「아프리카」의 시장은 상층은 구 식민 세력이 잡고 있고 하층은 인도인과 「레바논」인들이 잡고 있다. 그와 같은 물샐틈없는 구조 속에서 신진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자국화 정책으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아프리카」인 상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개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거래를 트려면 소량 주문에 장기 연불이라는 어려운 조건이 붙는다. 이런 조건도 선뜻 받아들이는 구미나 일본 상사와 비교할 때 주문 생산만 해온 한국 장사들로서는 경쟁력이 없다.
『여기선 도시 팔아 먹을게 없다』고 「나이로비」의한 주재원은 한탄했다. 「케냐」가 지난해 수입한 양은 12억「달러」나 된다. 그 큰 시장에서 한국이 수출한 양은 고작 3백4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예로 「아프리카」인이 좋아하는 색상을 넣은 옷감을 만들어 공급하려 시도한 회사가 아직 하나도 없다.
「아프리카」에서 지사를 하나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연간 7만「달러」. 그걸 뽑으려면 최소한 5백만「달러」를 수출해야 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한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3, 4개 사가 합쳐도 이에 미달이다. 그러니까 당장의 이윤만 따진다면 현재 파견되어 있는 지사들은 당장 철수해야될 형편이다.
어느 쪽으로 결단을 내리든 결정의 시간은 의외로 빨리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아프리카」는 「타잔」 영화에서 보던 암흑의 대륙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군사적으로 온 세계의 이해가 쓸린 거대한 무대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