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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것도 좋지만 있는 것부터 잘 들여다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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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필자의 한 친구 카카오 톡 자기 소개란에 이런 글이 있었다. “가슴만 칩니다. 삶은 계란 먹다가 막혔을 때 같아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자신과 주변에 대한 심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공무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럴 것 같다. 아마 공무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게다.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공무원들이 개혁의 대상으로 지탄을 받고 있으니. 어쩌다 이런 삶은 계란 같은 존재가 되었을까? 필자의 몇 가지 경험이 그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방 공립 미술관의 관장으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전임 계약직인데, 일종의 공무원인 셈이다. 국회처럼 운영되는 의회에 가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오기도 한다. 연말이면 미술관 예산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산담당관을 만나고, 인력 충원 문제로 기획관을 만나서 열심히 설명도 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시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해서 들은 말들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관리도 해야 했다.

 이때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지방이나 중앙이나 거의 비슷할 거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이 있는 반면, 왜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일은 잘 안 하지만 책잡히는 일에는 절대 빠져들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고 문제가 될 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항상 근거를 만들어 둔다. 의욕적으로 일하다가 저지르는 실수도 물론 없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 온 공무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필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보다 문제를 회피하고 문제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자기 관리의 모습들을 보면서다. 뒤늦게라도 현장에 가서 눈도장(?) 찍어야 하고, 증거 사진도 남겨야 하고, 정신 차린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전 공무원 연가 금지나 출퇴근 점검 명령도 내려야 한다. 수학여행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켜 문제 자체도 없애버려야 한다. 기대에 부푼 학생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우선 피하고 몸조심부터 하자는 발상이다. 반면에 구조활동을 하다가 생명을 잃은 잠수요원도 있었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119 요원이나 공무원들도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존재는 잊혀지고 형식과 관행적인 보고서만 두드러진다는 데에 있다. 항간에 떠도는 ‘공무원이 정해주는 대로 사는 사회가 공정사회’라는 말이 그냥 웃자고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필자의 또 다른 경험은 가끔 가서 보는 위원회에 관한 것이다. 교수들이 제일 많다. 전문성도 있고, 자기 일에 관련된 업무면 협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론이 시끄러워지면 안 되니까, 기자도 있어야 한다. 공무원도 물론 있다. 회의를 주도해야 하니까. 위원장은 대개 두 유형으로 나뉜다. 무난한 사람을 앉혀 놓기도 하고, 공무원들이 직접 맡아서 하기도 한다.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이런 자리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다음부터는 다시 부르지 않는다. 어차피 의견을 들어서 정책에 반영한다기보다 책임 소재를 나누기 위한 책임 회피용이기 때문이다. ‘관피아’가 문제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인데, 그런 관피아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통과시키는 간이 큰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달라질 수 없는 이유다.

 공무원도 사람인데 사명감만 갖고 살 수 있나라고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의명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자리라는 최소한의 사명감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정부에서 서둘러 새로운 부처도 만들고, 제도도 바꾸고 업무를 통합한다고 한다. 정작 중요한 건 사람문제인데, 제도만 서둘러 바꾸려 하니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거고, 우직하게 일만 했던 공무원들이 걱정이다. 공무원들이 목에 걸린 삶은 계란이 아니라 몸에 좋은 삶은 계란이 돼서 살 만한 세상 만들기의 주체가 되어야 할 텐데.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