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 읽기] 엉덩이에 드러난 문화의 속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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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엉덩이의 재발견
장 뤽 엔니그 지음, 이세진 옮김
예담, 336쪽, 1만2000원

인간의 엉덩이는 낮에는 대체로 과묵하다. 바지나 치마 속에 얌전히 들어앉아 몸의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제대로 돌아가게 이어준다. 영장류 139종 가운데 오직 인류만이 튀어나온 엉덩이를 지녔다. 엉덩이의 탄생은 곧 인간 직립보행의 시작과 맞물리며 두뇌 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엉덩이에 뿔이 났다'든가,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다'같은 표현을 보면 별일 안 하는 것 같은 엉덩이가 사람이 제 구실을 하는 데 꽤 중요한 부위임을 알 수 있다.

밤이 되면 엉덩이는 수다스러워진다. 입 대신 엉덩이가 말을 한다. 여성의 알몸을 그린 수많은 그림 속에서 엉덩이는 젖가슴을 제치고 감미로운 열정을 끌어내는 쾌락의 전령이 된다. "사방에서 엉덩이는 상종가를 치고, 여성의 엉덩이를 찬양하는 축제 또한 도처에서 벌어진다." 목욕 중이던 엉덩이는 침대로 뛰어든다. 성의 혁명이 일어난 20세기에 엉덩이는 재발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 언론인이자 작가인 장 뤽 엔니그는 엉덩이 애호가다. '아파렌시스(Afarensis)'부터 '엿보는 자(Voyeur)'까지 알파벳 순서로 33가지 항목에 걸쳐 엉덩이를 샅샅이 더듬었다. 그 가운데는 '후배위'나 '비역질하는 자들'같이 언급하기 거북한 주제도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에둘러가지 않는다. '똥구멍'항목에서 그는 "엉덩이는 오직 항문을 감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엉덩이의 풍만한 순결함, 하얀 대리석 같은 순수함, 그 말 없는 광휘가 부각"되어야 한다고 쓴다. 빵빵한 엉덩이가 칭송받는 이 시대에 '엉덩이의 재발견'은 때 맞춤하다.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라는 곁제목처럼 서구 미술사와 문학사를 헤집으며 엉덩이와 관련한 잡설을 시시콜콜 꼬집는 작가의 손길이 푸짐하다. 우리에게는 '보신탕 논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엉덩이가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얘기 끝에 작가는 결론처럼 적는다. "엉덩이는 기쁨을 준다. 그 풍만함에는 희열을 낳는 그 무언가가 내재한다. 특히 넘기 어려운 봉우리가 그러하다. 그 봉우리들은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우며, 미래를 믿고 싶게 만든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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