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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도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911년 여름이었다. 신예화가 「피카소」는 친우인 시인 「아폴리넬」의 비서로부터 산 작은 여인의 목 조각에 도취되었다. 며칠을 들여다보던 그는 강렬한 영감을 받아 뭣에 홀린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게 바로 찬란한 입체파의 탄생을 알리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조각품은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이었다. 이를 뒤늦게 안 「피카소」는 「루브르」에 자진 반환하였다.
그때까지 박물관측에서는 도난 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으로 「아폴리넬」을 범인은닉죄로 체포하고 「피카소」도 취체를 받았다.
「루브르」에는 20만점이 넘는 미술품이 있다. 그러나 수위는 2실에 1명꼴로 밖에 배치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도난도 잦다.
미술품도둑의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939년6월 「루브르」에서 「와트」의 유명한 작품『무관심한 젊은이』를 대담하게 50여명의 관중이 보는 앞에서 떼어간 젊은이가 있었다.
두 달 후에 자수한 그는 낡아버린 그 작품을 복원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모나리자』의 명화를 감쪽같이 훔쳐낸 가난한 「이탈리아」인이 있었다. 그는 「파리」의 「카페」에서 만난 여인을 「모나리자」가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 「모나리자」가 지난 74년에 일본에 나들이온 적이 있다. 그때 작품수송비 5억원 중의 5분의1이 경비원의 비용이었다. 그리고 방탄 「유리」로 만든 특별전시 「케이스」의 제작비가 2천만원이었다고 한다.
지금 얼마나 많은 명화들이 도난 당하고 있는 줄 모른다. 국제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것도 1백점에 가깝다.
미술품의 도난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은 장믈아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수지(?)가 엄청나게 맞기 때문이다.
어제 대전에서 전시 중이던 국전작품 중에서 59점이 도난당했다. 그동안 우리 나라에도 미술품도난사건은 흔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고미술품에 한했었다.
국전작품이 전시 중에 도난 당하기는 국전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대화 값도 그만큼 올랐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반가와 할 일은 못된다. 분명히 장물인줄 알면서도 사겠다는 장물아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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