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그룹」대표 원길남씨 구속|무리한 기업확장으로 13억원 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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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동「붐」을 타고 갑자기 성장한 원「그룹」대표 원길남씨(42·서울 관악구 동작동 307)가 13억원의 부도를 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지검 형사2부(신형조 부장검사·이종찬 검사)에 따르면 원씨는 모기업인 원기업외에도 원건설을 세우는 등 무리하게 기업을 확장하는 바람에 자금난을 겪게되자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K실업 등 10여개 회사를 상대로 10여 차례에 걸쳐 모두 13억여원의 부도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원씨가 부도를 낸 이외에도 국내 S사·K사 등 3개 종합상사들에 약 1천만「달러」(한화 50억원)의 가짜 선하증권을 팔아 30여억원을 사취한 사실도 밝혀내고 공범 강천인씨(36·무역담당이사)를 수배했다.
원씨는 금년초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해외로 도피, 일본·「홍콩」등 동남아를 전전하다가 지난달 19일 귀국, 지난 11일부터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원씨는 원건설의 중동건설공사가 제대로 안 되는 데다 부도까지 터지자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등지에 「시멘트」·철근·「파이프」등 건축자재를 수출한 것처럼 가짜 선하증권을 만들어 S사·K사·S사 등 3개 종합상사에 속여 파는 등 사기극을 벌여 왔다고 검찰관계자가 밝혔다.
가짜 선하증권은 원기업 이름으로 됐으며 이 사실이 부분적으로 드러나자 원기업의 전 재산을 방계업체로 넘겨 피해회사들이 피해액을 회수하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조치했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위조 선하증권을 사들인 회사들은 이를 담보로 국내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얻어 사용한 후 위조사실이 밝혀지자 은행에 자진해 빚을 갚았으며 회사와 은행관계자 상당수가 인사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씨가 사기극을 벌일 당시 업계에는 『중동에 진출하려면 원씨를 통해야만 한다』고 알려질 정도로 원씨의 영향력이 있었고 이 때문에 피해회사들은 별 의심 없이 위조 선하증권을 사들였다.
원씨는 한국 「이슬람」교 초대사무총장을 지냈고 68년 「사우디아라비아」에 건너가 9년 동안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귀국, 원기업을 창설했다.
원씨는 이 때 4천5백만「달러」어치의 수입신용장을 갖고 들어와 국내업계의 부러움을 샀으며 몇 달만에 4백만「달러」수출실적을 올렸고 1천5백만「달러」어치의 신용장을 국내업체들에 넘겨줌으로써 두각을 나타내 76년 수출의 날에는 상공부장관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 그 뒤 원씨는 원「엔지니어링」·원건설 등 방계희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아랍」어에 능통한 원씨는 회사사무실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이슬람」교사원이 마주 보이는 곳에 차려놓았으며 외국「바이어」들과 상담할 때는 고급「크라이슬러」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재력을 과시하는 등 많은 화제를 남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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