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묘사로 전통 소설 작법 타파|내한하는 불 「시네·로망」작가 「알랭·로브그리예」의 문학 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앙티·로망」(반소설)의 기수로, 「시네·로망」(영상 소설)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프랑스」작가 「알랭·로브그리예」씨가 국제 문화 협회 초청으로 11일 내한한다. 내한에 앞서 그의 문학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민희식 교수(이대·불문학)를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과거의 전통 소설에 있어서는 작가는 만능하여 작중 인물의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독자도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러한 작품은 줄거리를 재미있게 요약할 수도 있고 작중 인물의 성격도 통일되어 있으며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
「로브그리예」는 이러한 전통 소설의 수법이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인간 중심이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문장에서 우리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수사학이므로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것은 그 만큼 더 허위에 가까운 것이며 인간의 감정을 자연 속에 집어넣는 것도 허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잔인한 태양> 또는 <분노는 폭포처럼><변덕 많은 날씨>와 같은 표현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외계의 사물에 대한 묘사를 함에 있어서 그 사물 자체를 정확하게 그리지 않고 멋대로 거기에 인간적인 성질을 부여해 온점을 비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외계를 멋대로 인간화하지 않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내야 하며 결국 작가란 자신의 시점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한 인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로브그리예」소설은 줄거리도, 성격 묘사도 없다. 자기가 쓰는 작품에 대해서 아무런 해석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사물과 인물의 객관적인 묘사만이 나타나 있다.
그의 소설 이론이 <의미>의 부정에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의미의 세계의 부정은 소설 세계에 있어서의 모든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소설 세계는 침묵 영상 사물의 세계만이 순수하게 존재한다. 그의 소설 수법의 특징은 다음 5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다.
①작품이 시각적으로 구성돼 있다.
②모든 인물이나 사물은 오직 사물의 관점에서 그려낸다.
③작품 속에 전개되는 내용은 모두 현재형의 세계다.
④인간의 의식의 불확실한 면을 들추어낸다.
⑤모든 대상 묘사는 기하학적인 구도를 이룬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기하학적인 묘사로 구성되며 인간의 심리는 전혀 그려내지 않는다.
즉 「로브그리예」의 소설은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통해서 인간의 의식 현상의 모호한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 하에 쓰여져 있다.
사실 반소설 작가들의 공통점은 각자의 주관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지만 「로브그리예」는 사물과 인간을 분리해 놓고 인간의 의식 현상과 사물과의 관계가 끝없이 모호한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객관적 묘사를 통하여 추구함으로써 전통적인 소설을 타파하고 새로운 소설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인간 의식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역으로 외계의 사물에서 묘사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 현상의 모호함에 대한 불신감을 들춰내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의 주요 작품 『고무』(1953) 『엿보는 사람』(1955) 『질투』(1957) 『미로』(l957)는 다 이러한 점에서 흥미 있는 작품들이다. 「로브그리예」는 196l년부터 「시네·로망」(영상 소설 또는 시각 소설)이라는 새로운 소설의 「장르」를 만들어 냈으며 최초로 작품과 영화로 이룩된 『작년의 「마리엥바드」는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민희식<이대 교수·불문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