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발급사무의 지방이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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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권발급의 급증추세에 비추어 여권의 신청접수와 발급된 여권의 교부업무를 각도로 확대해 나가려는 정부 당국의 검토는 이해 할만 하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방안은 제주도에만 적용중인 여권의 지방접수·교부제도를 다른 시·도청 소재지에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 해외여행은 아직 하나의 특전에 속한다. 모든 사람에게 해외여행의 권리를 인정하고 특별한 사유로 인한 부적격자만을 제의하는 네가티브·시스팀이 아니라, 드리어 특별한 용무가 있는 사람 외에는 해외여행을 불허하는 포지티브·시스팀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최근 대외무역과 인력진출의 급격한 확대에 마라 여권 발급량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75년에 8만8천40건이던 여권발급량이 76년에 11만7천7백23전, 77년에 15만4천4백4건, 78년에는 10월말까지만도 16만6천3백32건으로 부쩍 늘었다. 해마다 전년비 30%이상의 증가 템포다.
더우기 정부는 80년대에 들어 국민의 해외여행을 포지티브·시스팀에서 네가티브·시스팀으로 전환하는 여행 자유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여권 발급수요도 폭발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여권발급체제로는 이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차피 여권업무도 궁극적으로 지방자치단체로의 이양이 불가피하다.
여권업무의 지방이양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현재 제주도처럼 신청접수 및 여권교부업무만을 이양하는 형식적 이양과 선진외국의 경우처럼 발급업무자체를 이양하는 실질적 이양이다.
신청인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취지에 충실하려면, 접수·교부업무뿐 아니라 발급업무자체를 이양하는 쪽이 바람직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같은 이양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선 사전에 상당한 준비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해외여행의 자유화를 위한 여건이 성숙되는 것은 물론, 가장 시간을 끄는 신원조회 업무의 전산화로 각지방자치단체에서 그 결과를 단시간 내에 알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단순한 여권발급업무만의 지방이양은 오히려 여권신청인의 불편만을 더할 위험이 크다.
각국과의 비자(사증)면제협정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여권을 지방에서 발급 받는다 하더라도 비자를 받기 위해 외국공관이 모여있는 서울을 다녀가야 한다면 여권발급의 지방이양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수용태세 또한 중요한 문제다. 여권발급업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는 않지만, 공정한 판단과 신속한 처리가 요구되는 일이다. 때문에 발급업무 자체의 이양에 앞서 신청·교부업무의 이양을 통해 수용태세를 다져 나갈 필요가 있겠다.
또 여권업무의 지방이양이 검토되는 것을 계기로 우선 여권신청구비서류의 최대한의 간소화가 이뤄졌으면 한다.
동일서류의 복수제출이 요구되는 서류는 복사를 활용하고, 보안교육은 초행자에 국한토록 하는게 좋겠다.
더구나 간소화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관계공무원들의 책임 모면용으로 남용되는 관계부처 조회란 형식은 완전 철폐되어야 한다.
해외여행의 궁극적인 자유화시대에 대비해 여권발급업무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요구되는 싯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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