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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면 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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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우리나라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하나의 답을 좇는데 익숙한 ‘정답(Right Answer) 사회’다. 개인이 창조적으로 생각해낸 ‘좋은 답(Good Answer)’을 찾기보다는 윗사람이 정해주는 답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가 불러주는 정답을 받아쓰는 문화가 발달했다.

 이런 모습은 관료사회에서도 나타난다. 얼굴을 마주보고 소신껏 대화하는 백악관식 토론이 아니라 얼굴을 푹 숙인 채 메모하기에 바쁜 모습이 공직사회에 퍼져 있다고 한다. 수동적으로 읽고 듣고 쓰는 데는 익숙하지만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습관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하다.

 대표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국제행사에서 대통령이 창조경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그들은 창조경제를 나와 우리 조직에 필요한 혁신이 무엇인지 각자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창조경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며 대통령과 정부에 자꾸 정답을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는 왜 ‘좋은 답’을 고민하지 않고 위에서 정해준 답만을 ‘정답’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왜 다양한 답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답만을 찾으려 할까.

 대표적으로 학교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국의 수백만 학생은 오로지 교육부와 선생님이 정해주는 답만을 맞히는 교육을 받는다. 흥부는 착한 사람, 놀부는 욕심쟁이라 외워야 한다. 만일 흥부는 게으르고 놀부는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창조적인 답을 쓴다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좋은 대학에도 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창조적인 DNA는 학창 시절부터 억제되어 왔다.

 정답 문화는 우리 사회에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첫째,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맞춤형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완성차 강국이지만, 개조차 산업은 후진국 수준이다. 공장에서 만든 똑같은 음료는 많지만, 나만의 음료를 만들 수 있는 가루음료는 드물다. 나만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맞춤복보다 표준 크기로 만들어 놓은 기성복에 내 몸을 맞추는 것에 익숙한 지 오래다.

 둘째, 새로운 직업이나 업종을 찾기보다 남들 따라 하는 데 익숙하다. 좀 된다 싶어 너도나도 치킨집을 열다 보니 과당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에는 3만 개의 직업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1만 개의 직업밖에 없다고 한다. 기존의 직업만 찾다 보니 우리는 2만 개의 직업을 잃어버린 셈이다.

 셋째, 우수한 인재는 많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남들과는 다른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이것이 익숙지 않은 탓이다. 반면 창조적인 교육 방식으로 유명한 유대인은 인구가 13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전체 수상자의 20%가 넘는 178명을 배출했다.

 넷째, 문제가 생기면 남 탓을 한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안전문화를 확산하는 것도 국가가 답을 주고 해결해 주길 기다린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나’고, 안전을 지키는 것도 ‘나’라는 적극적인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벗어나는 데는 남이 갔던 길을 쫓아가는 팔로어십(followership)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21세기 선진대국이 되려면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창조적인 길을 만들어 가는 리더십(leadership)이 있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때 승리가 다가오는 것이지, 남들과 같은 뻔한 플레이로는 결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이제 바꿔야 한다. 하나의 정답을 찾는 문화에서 벗어나 각자가 좋은 답을 만드는 문화로 바꿔야 한다. 스스로 학습을 주도하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토론식 회의를 해보자. 윗사람이 정해준 하나의 답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수많은 좋은 답을 만들 수 있다. 하나의 답만 기다리는 사회보다 여러 개의 좋은 답을 창조하는 사회, 대한민국이 선진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