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민」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되돌아오는 사함이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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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을 지상천국으로 알고 이민 왔던 한국인들 중에서 미국 생활에 끝내 적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가는「역이민(역이민)」현상이 최근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역이민 현상은 아무런 준비나 각오 없이 미국에 왔다가 이질적인 문화·언어장벽 등에 부닥쳐 절망감을 극복하지 못한데다가 한국의 경제가 놀랍게 발전함으로써 실의에 차있는 동포들에게 오히려 한국이 『큰 기회의 나라』로 보여지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미국이 받아들이는 한국인 이민 「쿼터」는 매년 3만 명. 이에 비하면 미국에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런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는 자체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돈 날린 사람도>
이런 새로운 경향은 「로스앤젤레스」 「뉴욕」지역 등 동포밀집지역에서 두드려져 양쪽지역을 합쳐 한달 평균 30여 가구씩이 영구귀국하고 있다고 총영사관은 말하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영구귀국자는 대체로 학위가 끝난 유학생 가족들의 귀국과 10여년 이상 오랜 이민생활 끝에 여생을 조국에서 보내려는 노인층의 자발적인 귀국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측은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학생들이나 노인층의 자발적인 귀국사례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귀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뉴욕」총영사관의 이상철영사는 「뉴욕」총영사관 관할구역 안에서 한달 평균 10여가구가 이삿짐을 싸 들고 한국으로 영구귀국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고되고 장기적으로 볼 때 큰 희망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사는 『미국에 일찍 와서 돈을 모은 사람이나 늦게 이민 와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가져온 돈을 거의 날린 사람들일수록 한국행을 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귀국독촉 전화 받아>
지난6월 영구 귀국한 최선용씨(39) 는 8년 전 이민 와서 줄곧 「뉴욕」에서 야채상을 했다.
생활은 문제가 없었으나 야채상의 일이 상당히 고된 편이어서 몸이 약한 최씨에게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지난해 서울에서 3개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숙부로부더 『귀국해서 회사1개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엔 몹시 망설였으나 숙부가 1주일이 멀다하고 전화를 걸어 『한국의 사업전망이 「뉴욕」의 야채상보다 훨씬 좋으니 마음 고쳐먹고 돌아 오라』는 설득에 귀국했다. 그의 가족도 가게를 정리하고 연말쯤 서울로 갈 예정이다.

<강도도 자주 만나>
공무원으로 있다가 2년 전 이민 왔던 박모씨(43)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그마한 식품상을 경영해 왔으나 끝내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1년 만에 귀국, 복직했다. 박씨는 『역시 내 나라가 좋다는 것을 외국 가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고 말했다.
12년 전에 이민와서 「볼티모」근방에서 식료품점과 가발점 등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조모씨(40)는 흑인촌에서 장사를 하던 중 세 번이나 권총강도를 만났으며 마지막에는 거의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가족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아무 불편이 없었던 조씨 일가는 가족회의를 거듭한 끝에 한국에 돌아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조씨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것이 아까웠으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부인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지난8월 귀국한 그는 현재 서울의 모수출회사에서 부장직에 근무하고 있다.

<이윤 적은 식품점>
지난 6월말 「로스앤젤레스」에서 5식구를 앞세우고 귀국길에 오른 김무씨의 경우. 김씨는 『4년 전에 이민와 「로스앤젤레스」근교에서 구멍가게 비슷한 서양식품점을 경영했으나 이윤이 적고 경험도 부족해 재미를 못 봤는데 서울에 두고 온 5백만 원 짜리 여의도 「아파트」가 지금 2천만 원 이상으로 뛰어 올랐다』면서 『소심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국에서 몇 년 안에 그렇게 돈을 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미국생활에서 몸에 밴 근면한 생활태도를 가지고 서울에 가서 분발하고 싶어 미련 없이 떠난다』고 말했다.

<고국호황도 계기>
동포들의 귀국을 부채질하는 이유에 대해 「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측은 『막상 미국에 와보니 경험도 없는데다가 최근의 미국 불경기 때문에 고생이 막심한데 비해 한국의 경기는 날로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들려 되돌아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아직 이민의 뿌리를 못 내린 많은 동포들은 여행자들이나 한국을 들려본 동포들로부터 『요즘 한국에서는 중동진출 「붐」을 타고 인력공급이 달리는 형편이고 실업율도 크게 저하돼 생활이 전보다 훨씬 윤택해졌다』 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상당한 동요를 느낀다고 실토하고 있다.
그러나 역이민하는 사람들 중에 수년 전 한반도의 불안한 정세를 피해 이민 왔다가 국내의 정세가 안정되고 경제가 호황을 누리자 귀국하는 「도피성」형의 귀국사례도 더러 있다.
【워싱턴=김건진특파원·로스앤젤레스=정관현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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