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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사람은 머리가 좋다? IQ 120이면 역량 충분히 발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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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창의성의 화신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1512년 작품). 그의 IQ는 180~220 정도로 추산된다.

개인과 나라의 발전에 창의성·창조성(Crea tivity)이 꼭 필요한 시대다.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라는 신조어가 시대적 절박함을 요약한다. 하지만 창의성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창의성이 연상시키는 단어를 살펴보자. 천재(天才)가 생각난다. 천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고 있다. 이 ‘선천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릴 수 있다. 또 창의성 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뭐니 뭐니 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다. IQ가 180~220 정도로 추산되는 인물이다.

 이쯤 되면 풀이 죽어 ‘창의성하고 나는 친할 수 없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릴 수 있다. 잘못된 결론이다. 창의성에 대한 오해나 편견, 무지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라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지은 『창의성: 발견과 발명의 심리학(Creativity: The Psychology of Discovery and Invention)』(1996)의 일독을 권할 만하다.

『창의성』의 우리말 번역본(왼쪽)과 영문판 표지.

 수십 년 동안 창의성에 대해 연구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창의성』을 쓰기 위해 각 분야에서 창의성을 인정받은 275명의 명사에게 인터뷰를 제의하는 편지를 썼다. 3분의 1은 인터뷰에 응했고, 3분의 1은 응할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내왔으며, 4분의 1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 ~2005)는 다음과 같은 거절 서신을 보냈다. “나는 귀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창의적이라고 하지만 나는 창의적인 게 뭔지 모릅니다. 나는 그저 터벅터벅 걸어가듯이 노력할 뿐입니다.”

 91명의 창의성 아이콘들을 인터뷰한 결과 탄생한 『창의성』의 결론은 이런 것들이다.

-창의성에는 개인 차원뿐 아니라 집단적·사회적 차원, 즉 공동체 차원이 있다. 창의성은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온다.

 -창의성은 기존 분야를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어떤 행위, 아이디어, 상품이다. 따라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자신이 속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동의, 특히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하는 핵심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는 게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 전체가 문지기다.

 -창의성으로 넘치는 사회는 창의적인 개인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창의성을 격려·장려하는 사회다. 3000여 년 동안 고대 이집트의 예술은 정체 상태였다. 이집트 사회가 바란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전통에 충실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창의성과 행복은 밀접하다. 몸과 마음을 바쳐 무아지경(無我之境)을 체험하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요 창의성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정신을 집중·통일해 창의성의 순간을 통제하는 게 중요하다.

 -창의적인 몰입·몰두의 순간은 사랑이나 맛있는 음식 같은 ‘쾌락’보다 일하는 순간과 관련이 깊다.

 -창의성은 고상한 것과 고상하지 않은 것을 가리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마룻바닥을 닦을 때에도 창의성이 구현될 수 있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돈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다. 인간은 보상에 의해 움직인다는 가설은 창의적인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창의적인 성과를 내려면 수년에 걸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섬광 같은 아이디어로 이룩하는 ‘한탕주의적’ 창의성의 결과물은 없다.

『창의성』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창의성의 대가들은 부모가 예술가이거나 대학교수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무척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거나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경우도 많았다. 중간이 없었다.

 -창의력을 발휘할 때에는 남다르게 생각하고 남다르게 행동했지만(예컨대 하루 10시간 동안 글자 그대로 오로지 ‘생각’만 하는 물리학자도 있다), 일상생활은 평범했다.

 -양면성을 지닌 성격이 특징이다. 성욕이 강하면서도 일할 때에는 일에만 몰두한다. 똑똑하면서도 순진하고 순수한 면이 있다. 정서적으로 미성숙 상태이면서도 깊은 통찰력이 있다. 내성적이면서도 외향적이다. 지극히 겸손하면서도 하늘을 찌르는 자부심이 있다. 정신적인 양성성(兩性性, androgyny)이 특징이다(성 정체성과는 다른 문제임). 창의적인 남성은 여성적이고, 창의적인 여성은 남성적인 경우가 많다. 몽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든다. 보수적이면서도 반골이다. 자신의 업적에 대해 엄청난 애착이 있지만, 동시에 냉혹한 평가를 가한다.

 -연구에 따르면 120 전후의 IQ 이상이면 창의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120으로 충분하다. 130, 140, 150 등 IQ가 높아진다고 해서 창의성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아침에 깨어날 때부터 목표가 있다.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에 ‘10분만 더’ 하는 식으로 침대에서 뭉개는 일이 없다.

Mihaly Csikszentmihalyi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헝가리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다. 10세 때 어른들이 얼마나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지 알게 됐다. 시카고대에서 심리학 학사·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부임해 수십 년간 근무했다. 심리학과에 진학했을 때 처음에는 실망했다.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비정상적’인 인간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창의성같이 ‘정상적’인 문제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클레어몬트 그레주에이트 대학 교수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몰입(Flow)』(1990)은 행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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