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밖을 보는 『감정적 눈』이 달라졌다|최상룡(중앙대 부교수 국제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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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생활의식조사(9월 22일자·일부지방 23일자)는 우리가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던 많은 상식을 정리해 주었으며 그 가운데는 우리의 통념과는 다른 사실들이 발견되어 퍽 흥미롭다. 사회조사방법을 전문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방법자체나 설문내용의 유효성과 타당성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지만 조사결과 그 가운데도 대외의식 특히 일본과 미국에 관한 태도에 대해 느낀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일본에 대한 응답자의 태도는 5년전에 비해서 좋아졌다는 점에 관해서다. 「귀하는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라는 물음에 대하여 5년전에 7.6%만이 좋아하던 것이 12.9%로 늘고, 싫어하는 쪽은 69.9%에서 58.6%로 10%이상 줄고 있다. 이와같은 결과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분석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전전 일본식민지통치를 경험한 세대가 점차 줄어들고 해방후세대가 늘어남으로써 군국 일본의 「이미지」보다 경제적 선진국으로서의 일본「이미지」가 증대한 결과라고 본다. 즉 「군국」일본이라는「이미지」보다 「경제」일본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덜 나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한국의 경제성장의 결과 일본이 우리의 국력을 과소평가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식민」· 「피식민」의 비대칭적 「이미지」에서 일목을 대등한 경쟁자로서 보려는 한국인의 자신감에서 그 원인을 찾고있다.
대체로 동감인데 각도를 달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인구의 50%이상이 1945년 이후에 출생했으며 일본에서도 이른바 전전의 「명치·대정」출생자는 13.7%에 불과하니 두 나라가 같이 전후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친」 「반」보다는 냉정한 이해의 방향으로 옮아갈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현상을 보면 대체로 약자가 도전적이게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도 『개도 무는 개를 돌아본다』는 말이 있지만 국가관계에 있어서도 비슷한 심리가 작용한다. 개인이나 집단 또는 국가간의 「이미지」는 상호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좋아지면 다른 한 쪽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70년 후반의 한국의 경제성장, 일본 안에서 한국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증대함으로써 그야말로 지나친 밀착이나 지나친 경시가 아닌 대등하면서도 냉정한 상호이해관계로 발전할 소지가 갖추어지고 있는 듯 하다.
둘째 대일 호감도에 비해 대미 호감도가 줄어졌다는 점에 관해서다. 「귀하는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의 물음에 대하여 5년 전에 미국을 좋아했던 응답자가 58.3%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43.6%로 14.7%나 떨어졌으며 싫어하는 쪽은 11%에서 20.3%로 불어났다.
그리고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층에서 특히 미국을 싫어하고 학력별로는 초등학교출신의 15.7%에 비해 대학출신의 29.6%가 미국을 싫어하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그러면 이러한 대미 부정적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미국의 주한 미군철수정책에 대한 비판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박동선사건과 관련된 현안문제에 대한 미국 측 태도에 대한 저항감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주한미군에 관해서 단순히 미군이 더 오래 주둔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입」이든「철수」든 간에 그 동기가 미국의 국가이익과 대국적「에고이즘」의 산물이라고 하는 국민적 자각이 싹튼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박동선 사건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 가운데도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줄어든 경우를 예상할 수 있는데, 이것도 역시 미국의 「보호」하에 있던 시대를 떠나 「난공기」에 들어서려는 그 나름의 자주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된다.
세째 미일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조사가 시사해 주는 정책적 의미에 관해서다. 너무 제한된 설문이기 때문에 강력한 논거는 되지 못하나 이번 조사결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①건전한 한국민족주의의 정신적 자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동안 수많은 외침을 받아오면서도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아이덴티티」(정체)를 유지해 왔다. 이것은 역시 복잡한 외압 속에서도 자주성을 견지할 수 있는 민족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주의는 남의 나라를 집어삼키는 식민주의로 전락한 역사가 없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건전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냉전체제하의 한·미·일 간의 수직적 한계가 긴장완화시대의 3국간의 수평적 관계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건전한 한국민족주의의 참모습으로 파악해야한다.
②국교의 정상화는 한번만의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한 것이나 「이미지」의 정상화는 보다 지구적이고 반복적인 상호노력으로써 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의식조사에 나타난 결과는 대미 태도변화-대일 태도 개선이라는 단순논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미간, 그리고 한일간의 「이미지」정상화를 위한 한국인의 자율적 표현이라고 봐야한다.
국가관계는 「친」해지는 것보다 「상호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함」은 애·증의 표현으로 나타나기 쉬워 정상적인 국가관계 또는 국민관계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뭏든 한·미·일 3국 관계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의식의 싹을 지도자들은 좋은 방향으로 흡수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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