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갈머리 없는 밴댕이 … 맛은 속 깊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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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1시 인천 연안부두 앞 3층 건물인 ‘밴댕이 회무침 거리’내 금산식당. 아직 점심 먹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40개 테이블이 꽉 찼다. 여기저기서 주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 무침 3인분.” “사장님, 여기 무침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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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구이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주문은 초고추장에 양배추·깻잎·오이 같은 각종 채소와 오징어를 넣은 무침이었다. 무침을 먹고 남은 야채와 양념에 공깃밥을 비벼 한 그릇씩 뚝딱. 빈 그릇을 치우기도 전에 기다리던 손님이 자리를 채웠다. 밴댕이 회무침 센터 안의 41곳 다른 점포도 상황은 비슷했다.

 밴댕이 철을 맞아 인천과 강화도의 밴댕이 타운·골목들이 북적이고 있다. 6월 말부터 7월에 걸쳐 알을 낳는 밴댕이는 지금 산란기에 대비해 한창 몸 안에 양분을 비축하는 시기다. 전어 같은 다른 생선도 그렇듯 밴댕이 역시 산란을 준비할 때 기름이 올라 고소한 맛이 한껏 난다. 석쇠에 구우면 ‘가을전어’ 뺨칠 정도다. 인천과 강화도에서 가장 큰 밴댕이 타운이 바로 연안부두 밴댕이 회무침 거리다. 3층 건물인데도 ‘거리’란 이름이 붙었다. 1960년대에 이 3층짜리 건물은 뱃사람을 상대로 한 해장국집이 들어찼다.

 시어머니 때부터 이곳에서 40여 년 장사를 했다는 송원식당 김정자(56·여) 사장은 밴댕이 회무침 거리의 역사를 이렇게 말했다. “해장국 먹던 어부들이 팔고 남은 준치를 술안주로 만들어 달라고 가져왔더래요. 이걸 야채와 매콤새콤한 양념장을 넣어 무쳤는데 그게 대박을 쳤다네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준치가 안 잡혔어요. 그래서 이걸 대신한 게 천지에 널렸던 밴댕이였죠.”

밴댕이가 제철이다. 10일 인천 밴댕이 회무침 거리의 금산식당에 손님들이 북적인다. 작은 사진은 밴댕이 회무침과 밴댕이회.

 72년부터 밴댕이 무침을 팔았다는 금산식당의 김옥규(65·여)씨는 “밴댕이는 ‘썩어도 준치’라는 준치보다 쫄깃함이 덜했다”며 “그걸 보완하기 위해 오징어나 한치를 넣고 무친 게 히트했다”고 말했다.

 밴댕이 무침이 인기를 끌면서 너도나도 해장국을 접고 밴댕이 전문점으로 업종 전환했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이 건물은 아예 이름을 ‘밴댕이 회무침 거리’로 바꿨다. 인천의 다른 지역에도 밴댕이 거리가 있다. 시내 한복판인 관교동 등이다. 밴댕이 무침 거리 원조집의 자녀들이 도심에 분점을 냈다.

 ◆밴댕이 소갈머리=10일 연안부두의 밴댕이 회무침 거리를 찾은 김영석(45)씨는 “밴댕이는 자연산밖에 없고, 그것도 국산만 있어 즐겨먹는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다. 밴댕이는 잡자마자 죽는 특성 때문에 길러가며 양식 방법을 연구할 수 없다. 중국 어선 역시 싱싱하게 가져갈 수 없어 한국 해역에서 밴댕이는 잡아가지 않는다. 밴댕이가 금방 죽는 이유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임영재 연구관은 “과학자들도 우스개 삼아 ‘성질이 급해서’라고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잡으면 바로 죽는 건 밴댕이 같은 청어과 어류들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제 성질을 못 이기고(?) 금세 죽는 특징 때문에 속 좁은 사람을 가리켜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하는 표현이 나왔다. 소갈머리는 ‘마음’ ‘속’을 뜻한다.

 서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밴댕이의 원래 이름은 ‘반지’다. 이를 강화도에서 부르는 ‘밴댕이’가 본딧말인 것처럼 굳어졌다. 서해 전역에서 잡히는데도 강화도에서 부르는 이름이 대명사가 된 것은 강화 밴댕이 육질이 최고라고 정평나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천공항과 영종대교 같은 개발 사업 때문에 강화도와 인천 지역에서는 밴댕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인천 밴댕이 타운에서는 목포·신안에서 잡은 것을 냉장 운반해 쓴다.

 강화도산 밴댕이만 내는 밴댕이 거리도 있다. 강화군 화도면 ‘밴댕이 마을’이다. 어민들이 직영하는 14곳 밴댕이 식당이 있다. 밴댕이 회와 무침, 구이·완자·튀김 등을 내놓는 코스 요리가 2만~2만5000원이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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