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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존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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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월드컵이 임박했어도 나의 야구 사랑은 계속된다. 이번에도 야구 얘기다.

 나는 야구선수 중에서 투수를 가장 좋아한다. 제 육체가 허락하는 한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온몸을 쥐어짜는 투수의 투구동작을 좋아한다. 투구동작 중에서도 고(故) 최동원, SK 김광현, 삼성 임창용 선수의 동작을 제일 좋아한다. 그들의 크고 다이내믹한 몸짓에서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안쓰러움 같은 게 보여서다.

 토미 존(Tommy John) 수술이란 게 있다. 원래 이름은 ‘척골 측부인대 재건술’로, 끊긴 팔꿈치 힘줄을 성한 힘줄로 이어붙이는 수술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토미 존이 이 수술을 받고 13년 동안 164승을 거둔 뒤로 토미 존 수술이라 불린다.

 메이저리그 해설가 김형준에 따르면 현역 메이저리거 투수의 23%가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서른아홉 살 현역 투수 임창용도, 메이저리거 류현진도, ‘끝판왕’ 오승환도 이 수술을 받았다. LG 필승조 이동현은 세 번이나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토미 존 수술은 투수에게 일종의 직업병이다. 말 그대로 ‘팔이 빠져라’ 힘껏 공을 던지다 힘줄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권투처럼 맞아서 다친 것도 아니고, 축구처럼 걸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다. 순전히 제가 제 육신을 끝까지 밀고 가다 제 육신을 망친 것이다.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다 육신을 버린 것이다.

 직업병은 어쩌면 인생의 훈장일지 모른다. 얼마 전 마포 곱창집에서 가위로 곱창을 잘라주는 주인 아저씨의 손을 본 적이 있다. 오른손이 기형에 가까울 만큼 굳은살이 박여 흉했다. 곱창이 아니라 곱창을 자르는 손을 주목하자, 그는 20년 넘게 곱창을 잘랐다는 오른손을 자랑스레 펼쳐 보였다. 울퉁불퉁한 손에는 긍지와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나도 내 몸을 들여다봤다. 햇수로 17년을 신문기자로 살고 있으니 내 육신 어딘가에도 흔적이 새겨졌을 터였다. 하나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아직 멀었구나 낙담하다 무심코 노트북 자판에 눈길이 갔다.

 내 몸에서 발견하지 못한 내 삶의 흔적이 거기에 남아 있었다. 자판에 새긴 자음 몇 개가 지워져 보이지 않았고, 자판 몇 개는 오목하니 패어 있었다. 내 직업은 플라스틱이 닳을 때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내 낡은 노트북은 요즘 부쩍 잔 고장이 늘었지만, 아직 힘줄이 끊어지진 않았다. 대견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노트북 자판을 처음으로 어루만졌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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