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함께…(9)|도예가 왕종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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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류 도예가 황종례씨가 지난 3년간 새로운 관심으로 제작한 귀얄분청의 작품 60점을 가지고 이 가을 문턱에서 첫선을 보인다. 뻣뻣한 돼지털의 솔로 백분과 흑토를 꺼슬꺼슬하게 칠함으로써 그가 종래 매끄럽고 화려하게 외장하던 기법과는 정반대의 질감을 나타내고 있다.
『모처럼만에 전시장을 맞춰 놓았더니 여름내 장마가 겹쳐 혼났군요. 흙도 안마르고 장작도 젖어있고해서 불을 땔수가 있어야죠.』 그의 분책기법의 실험은 무궁무진한 채색으로부터 한국적인 소박성에의 희귀를 뜻하는것 같다. 그는 스스로 분책이 모시·베의 맛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역시 이조초의 분청사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미미한 철분이 섞인 흙을 사용하지요. 그것을 청자처럼 환원염으로 해보고 흙은 산화염이나 중성염등 불을 조절해보면 태토의 낯깔이 연분홍이되기도 하고 연회색을 띠기도 합니다. 그에따라 그릇의 질감이 미묘하게 달라져 채색보다 더 깊고 그윽한 맛이 우러나오는 것을 알았읍니다. 종래 황여사의 18번은 보라빛과 황색의 채도. 그런 「컬러」 연구로 골똘하던 그가 한국적인 소재와 특질에 더 접근하려는 의도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분청사기는 우선 굽는 열도가 20∼30도쯤 낮아서 표면이 한결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까닭이다.
분청의 질감은 「컬러」이전의 상태죠. 이 부드러움 속에 한국적인 특질과 꾸밈없는 멋이 깃들여 있음을 왜 진작 발견하지 못했는지 자문해보곤 합니다.
서울근교 고양군 벽제의 산수맑은 산밑에 가마를 갖고 있는 황여사는 학교(국민대)에 나가는 시간 이외엔 그곳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한다.
그가 남달리 작가생활의 호조건을 가진 것은 널찍한 도요를 운영하면서도 상품제작에 초연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
『해외에 나가서 보니까 한국 도예가의 할 일이 더욱 절감됐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우리의 좋은 재료와 풍토를 어떻게 활용할까 새삼 반성되더군요. 물론 지금의 실험에는 많은 문제가 드러날 거예요. 분청에 알맞는 기형과 기벽의 두께, 또는 태토 빛깔위에 분장한 흑백시문의 조화등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이거든요. 단순히 옛 분청사기를 재현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단순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의 창작성으로 현대감각을 보여줘야하는데 오늘 도예가의 고민이 있다.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배우다가 다시 도예를 전공한 그는 74년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데 이어 추천작가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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