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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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있다. 김치다. 한국인은 그래서 어딜 가나 한국식당을 찾는다.
그러나 김치는 거저 음식에 딸려 나오지 앉는다. 돈을 따로 내야한다.
동경에서는 어린애 주먹만한 보시기에 넣은 김치 한 그릇이 1천원 꼴이나 된다. 깍두기 값도 같다. 「파리」는 이보다 좀 비싸다. 한 그릇에 1천 2백원쯤 한다. 물론 개평이 있을 리는 없다.
김치찌개를 시켜 먹고 있다가 동이 날 무렵에 『김치를 더 넣어드릴까요?』하고 주인이 묻는다.
공짜려니 하고 좋아하면 큰 일이다. 나중에 계산서에는 어김없이 추가되어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파리」의 김치 값은 비쌀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김치에 쓰는 배추·무 등을 재배하자면 「프랑스」 농민들로부터 밭을 빌어야 한다.
이게 싸지가 않다. 그래서 서독에까지 나가서 밭을 갈기도 한다. 그러려면 운송비도 여간 적지가 않다. 이래서 어느 「파리」의 식료품상은 「텔렉스」까지 놓고 장사를 한다. 배추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국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은 고기보다 김치를 더 찾는다. 그런걸 공짜로 제공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런 영문도 모르고 서양에 나가면 모두 인심이 야박해지는 탓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김치값을 따로 받는 음식점이 나돌기 시작했다. 한 그릇에 3백원. 아직은 국제수준(?)에 비겨 싼 편이다.
워낙 배추값이며 고추값이 너무 오른 탓이다. 김치값을 따로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배추 1포기에 1천원 했다. 그것도 비싸다고 주부들은 울상이었었다.
지금은 2천원이나 한다. 이보다 더 끔찍한 게 고추 값이다.
바로 3일전에 고추 1근에 2천 9백원 했다. 근데 어제는 3천 2백원으로 껑충 뛰었다. 내일은 얼마나 더 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더욱 모르는 것은 왜 이토록 값이 뛰어야 하느냐하는 이유다. 추석 때문으로 돌리기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크게 재주를 부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의혹만 짙어진다. 덕분에 한가지 잘된 것(?)은 있다.
고기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게 느끼는 것이다. 없어서 비단치마라지만 비싼 김치대신에 싼 수입고기를 사먹으면 되잖겠느냐는 얘기가 나올만도 하다.
고기 덤을 드릴 수는 있어도 김치 덤은 드릴 수 없다는 음식점 주인들의 통사정도 실감이 난다.
예전에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자 함기용 선수는 김치덕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김치가 먹기 어려워진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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