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갈등 해결한 '뽀로로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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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승아 안녕! 나는 네 친구 뽀로로야. 너는 참 밝고 씩씩한 아이구나. 하지만 집에서는 뛰어놀면 안 돼. 네가 집에서 시끄럽게 뛰어놀면 아래층이나 위층에 사시는 분들이 힘들어하셔. 그러니까 집에서는 뛰어놀지 말고 밖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자. 나랑 약속.”

 지난 4월 서울 동작구 본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 현승(7)군은 ‘뽀로로’에게서 온 편지를 받았다. 뽀로로는 현승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편지 우측 상단에 색연필로 그려진 뽀로로는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현승이는 엄마, 아빠에게 우쭐대며 자랑했다.

현승이가 받은 뽀로로 편지의 실제 발신자는 동작구 본동 래미안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였다. 전업주부인 현승이의 엄마는 “뽀로로 편지로 오니까 잔소리로 듣기는커녕 재미있어 하더라”며 “이후로 아들도 이전과 달리 조심해서 걷는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본동 래미안 아파트에 사는 현승이가 받은 뽀로로 편지(위). 엘리베이터에 게시된 뽀로로 편지를 보고 있는 주민들. [사진 아파트 주민 신경미씨]

 8일 찾은 이 아파트 단지 내 엘리베이터 벽에는 현승이가 받은 편지와 비슷한 뽀로로 편지가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1m가량 높이였다. 그 위로 지난해 6월 주민대토론회 이후 작성한 ‘층간 소음예방 주민협약’이 게시돼 있었다. 협약은 주민 간 다툼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 위주로 돼 있다. 피아노는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자제, 세탁기 돌리는 시간은 오전 8시~오후 10시 허용 등이다.

 신경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층간소음 갈등 대부분은 아이들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어른 싸움으로 커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경공단이 지난 3년간 층간소음 민원을 분석한 결과 72.9%는 아이들이 뛰는 경우다. 이에 착안해 지난해 2월부터 주민회는 층간소음 갈등이 아이들 뛰는 소리가 주인 경우 아이에게 뽀로로가 쓴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보낸 편지가 최근까지 10통이 넘었다.

실제 편지 작성자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고학년 3~4명이다. 또 엘리베이터를 소통공간으로 적극 활용했다. 엘리베이터 거울이나 게시판에 붙는 광고를 없애는 대신 주민들이 서로 불만사항을 전달할 수 있도록 쪽지 메모판을 만들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본동 래미안 아파트는 지난해 국토교통부 ‘2013 공동주택 우수관리단지’, 동작구 ‘명품아파트최우수단지’로 선정됐다.

 서울 도봉구 방학3동 신동아아파트도 야단 대신 소통으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했다. 1990년 건축된 아파트라서 주민들 간에는 하루에 3건가량 층간소음 민원이 발생했다. 2012년 5~9월 층간소음 민원은 245건이었다. 단지 주변 신방학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진원지였다.

주민들은 학교와 연계해 도덕시간에 학생들이 아랫집, 이웃집에 엽서를 쓰도록 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다음 해 5~9월 관리사무로에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은 118건. 절반 이상 줄었다.

주민 오선순(41)씨는 지난 3월 편지함에 꽂혀 있는 엽서 한 장을 봤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편지에는 “요즘 많이 뛰었죠?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매일 달리기나 장난감 놀이를 하며 소음을 일으켰던 위층 아이들이 보낸 사과 엽서였다. 주민 방정란(53)씨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는데 편지를 받고 난 후부터 옆집 여학생 생일날 피자와 과일을 배달시켜 나눠줄 정도로 친해졌다”고 말했다.

 곽도(73)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두 아파트는 층간소음 갈등 해결의 모범 사례”라며 “아파트 내 공동체 활성화를 생활문화운동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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