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갖가지 악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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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동의 한국인」들은 이 지역의 특수한 생활여건 때문에 갖가지 고난을 겪는다. 낯선 이국땅의 생활이니 어느 나라건 수월할리 없겠지만 이국중에도 중동지역은 특히 고통이 심하다.
언어소통 면이나 생활관습 면에서 뿐 아니라 습도나 온도 등 자연환경조건이 맞지 않아 한국인들은 큰 곤욕을 치른다.
이 지역기후는 한국인이 견디기 어려운 첫 번째 관문.
3월초 「테헤란」에서는 아직 난방을 하고 있었지만 「걸프」 연안의 나라들에서는 「에어컨」을 돌리고 있었다.

<새들도 기진>
섭씨 30도를 기록한 3월7일의 「바레인」에서 김인두 대사는 『기온보다 습도가 더 무섭다. 6월부터 습도 99∼l백이 되면 길가의 차량은 모두 흠뻑 젖게 된다』고 했다.
또 「오만」의 대한무역관관장 김경두씨는 『한참 더울 땐 섭씨 50도 이상으로 올라가 새들도 거의 죽는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동아건설 「제다」지점의 이재희 차장도 『기후 등의 악조건으로 계약기간 1년 이상 근무하려는 근로자는 거의 없다』고 했다.
세계에서 제일 더운 곳으로 손꼽히는 「이란」의 「반다르·아바스」와 「아와즈」 등은 지난6월 벌써 섭씨50도를 넘는 폭염이 쏟아져 피난소동까지 벌였다.
6월까지도 북쪽 「알볼즈」산에 덮인 눈을 바라볼 수 있는 「테헤란」은 이 때문에 일견 「중동의 천국」 같다.
인공개천으로 뿌리에 물을 대는 「팔레비」로의 울창한 가로수며 수돗물을 뿌려 키우는 푸른 잔디하며 「로터리」와 공원에서 시원하게 치솟는 분수 등은 수십년 전만해도 황량했던 사막의 기억을 까맣게 잊게 해준다.
그러나 「테헤란」은 우리나라 대관령의 2배나 되는 해발 1천7백m의 고지대로 희박한 산소, 3면이 산으로 막혀 세계제일로 손꼽히는 매연공해, 연평균 31도의 건조한 습도에 시달리는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빨리 늙는 기분>
「테헤란」 교민들의 화제중에는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신체상의 이상현상이 자주 거론된다.
지난5월 「테헤란」 한국인 학교장으로 새로 부임한 정희진 교장은 『자다가 숨이 너무 가빠 숨소리에 잠이 깨는 수가 많다』고 말한다.
KAL 지사장인 최홍범씨(37)는 『빨리 늙는 기분』이라고 했다.
또 S상사의 임모 과장 (37)도 『신체가 줄어드는 것 같다. 서울서 가져온 옷이 헐렁해지고 주름살이 자꾸 느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런 자연환경에 시달리면 조화된 감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남자들은 일터에 나가서 땀을 흘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에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날이면 날마다 답답한 「아파트」에 갇혀 살아야하는 주부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천하없는 「잉꼬」 부부라도 처음 한 6개월간은 크고 작은 부부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테헤란」 대사관의 상무관은 『왜 이런 곳에 사람을 데려다 감옥살이를 시키느냐』며 6개월동안 부인이 매일 울었다면서 온지 얼마 안되는 후배주재원들을 위로한다.
「오만」의 한국무역관장도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지만 좋은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동네 작은 가게에 담배 사러 아이들을 내보내면 아이들은 나가는 재미에 기뻐하지만 「이란」주인집 마님은 『유괴사건이 많은 곳인데 어떻게 애들만을 내보내냐』며 질겁이다.

<영화는 그림만>
그래서 한국인들은 주로 일과후 자가용으로 일가족이 다른 집을 한꺼번에 방문, 얘기의 꽃을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다.
「이란」 사람들 눈엔 그래서 한국인들이 유난히 시끄러운 민족으로 보인다.
걸핏하면 손님이고 아이들끼리 만나면 「아파트」를 이리저리 뛰면서 온통 법석을 피우기 때문이다.
극장 값이 한국 돈으로 불과 5백∼6백원으로 가족동반 영화관람도 하지만 모두가 현지말로 방영, 그림만 보고 돌아온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엔 극장도 없다. 그러나 형편이 나은 「두바이」에서는 인접 토후국에 단체로 「피크닉」·해수욕을 즐기기도 한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싸우는 한국근로자들은 중동인처럼 「터번」과 수건을 쓰고 건설중장비로 몰려 일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골재공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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