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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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이건 어른이건 모두가 젖꼭지를 물고 앉았다. 배가 고프면 그걸 빨면 된다. 그러니까 땀흘려 애쓸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 그건 유모가 할 일이다. 바로 유모는 국가고 그래서 이름 붙여진 게 이른바 「유모국가」다. 영국 사람들은 그걸 「내니·스테이트」(Nanny Stated)라 부른다. 올 가을에 총선거가 있을 거라고 하더니 이 「유모」어쩌고 하는 얘기가 영국에서 심심치 않게 나돌고있다.
주로 보수당이 노동당을 두드리는 몽둥이 감으로 쓴다.
가장 앞장 선 사람은 「마거리트·대처」여사다. 그녀의 말을 빌면 영국이 이렇게 비틀거리게 된 건 순전히 「사회주의자」들이 나라를 「유모국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란다. 평등과 복지로 너무 치달리다보니 일이야 하건 말건 밥은 으례 나라가 먹여 주어야 하는 것 쯤으로 누구나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립정신」이나 「진취기상」따위가 자라기엔 그야말로 쓰레기통의 장미 피기다.
『그러므로…』하고 이 중년아주머니 당수가 끄집어내는 결론은 아주 간단하고 한결 같다. 멀쩡한 사람들이 남의 젖꼭지나 빨고 있는 꼬락서니 이제 그만두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처」여사의 주장이 사회보장제도를 몽땅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또 대관절 어디까지가 바람직한 「복지국가」그 어디부터가 마땅치 않은 「유모국가」가 되는 거냐를 분명히 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유모국가비판 때문에 어쩌면 수상자리에 오를는지도 모른다.
보통 평등사회·복지국가라고 하면 누구 나가 바라는 이상인 것처럼 여겨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나 이상이란 것도 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다.
한번도 경험을 못해본 우리에게는 배부른 소리인 것 같고 얄궂은 입씨름만 같다.
그저 영국재상자리를 노리는 「대처」아줌마의 입놀림을 눈여겨볼 뿐이다. <박중희 런던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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