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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기자 종군기] 공화국수비대 황급히 퇴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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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라크 전선에 오면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공화국수비대(Republican Guard)'였다. 이름이 결연(決然)한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1991년 걸프전 때부터 '이라크의 최정예'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종군취재에선 공화국수비대와 얽힌 얘기가 꽤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그 요란했던 공화국수비대는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다. 바그다드 시내에 잠복해 최후의 일전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말이 사실이고, 또 그들이 제대로 저항할 경우 미군의 바그다드 공략은 힘든 전투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 외곽 전선에서 퇴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잔해는 '위용'과는 거리가 멀다.

5일 오전 6시(현지시간) 나는 카르발라 북부 사막평원에 설치된 임시 보급기지를 떠나 바그다드 남부 20km까지 이동했다.

제3보병사단에 보급하는 24지원단의 396중대 탄약수송차와 181대대 515중대의 연료수송차를 따라간 것이다. 가는 도중 곳곳에서 공화국수비대의 처참한 흔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라 라자에 이르자 육중한 미군 탱크에 짓밟힌 철문 하나가 누워 있다. 한 이라크 군부대에는 구소련제 탱크.대공포.기관총.고사포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포탄을 맞은 듯 찌그러진 것도 있지만 멀쩡한 것도 있다. 여기저기 화약통도 널브러져 있다. 대전차로켓포(RPG) 같은 무기가 버려져 있는 것도 보인다. 중대장인 에밀리 호컴 대위는 "공화국수비대 부대 같다"고 했다.

부대를 지나니 이라크 방어진지가 이어졌다. 길 옆으론 참호가 파여 있고, 미군 탱크의 전진을 막으려 했던 듯 흙무더기가 쌓여 있다. 모래 둔덕엔 타이탄 트럭보다 조금 큰 군용트럭이 구멍이 난 채 뒤집혀 있다.

이라크 방어 구간이 끝나자 10여㎞에 걸쳐 미군 진영이 나타났다. 브래들리 장갑차 중대를 지나니 도로 왼쪽에 기갑.보병.공병 부대들이 포진해 있다. 미사일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 20여기도 보인다. 모두 바그다드를 향하고 있었다.

수송차량들은 기지를 떠난 지 1시간30여분 만에 임시 보급기지로 예정된 바그다드 인근의 한 공장에 도착했다. 콜빈 베넷 중대 인사계는 "화학공장인데 이라크군이 주둔했던 듯하다"고 소개한다. 나는 합동 정찰에 따라 나섰다.

사무실마다 이라크군들이 황급히 달아난 흔적이 역력했다. 문서가 책상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서류함도 열려 있다. 수건이 깨끗하고 구석에 놓인 계란도 상하지 않은 걸 보니 하루 이틀 전까지 이라크군들이 머물렀던 모양이다. 한쪽 구석에는 사용하지 않은 탄환들이 흩어져 있다. 퇴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정오쯤 공장 한편 개활지에 '어미' 유조차들을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 각 부대의 '새끼'기름 차량들이 몰려든다. 줄잡아 1백여대. 3사단의 이틀치 분량이다.

한낮의 태양이 뜨겁다. 상의를 벗어젖힌 미군들이 헐떡대며 물을 들이켠다.

바그다드 남서쪽 20여㎞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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