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활동은 위장이었다-김용제씨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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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제하의 저명한 시인이었으며 「총독상」을 수상한 경력으로 해방후 대표적 친일문인으로 낙인찍혔던 김용제씨(70)가 「일제하의친일문학활동은 지하독립운동을 위한 위장행위였으며 실제로는 「동양지광」의 간판을 내건 지하독립단체의 맹원으로 활약했다』는 글을 「한국문학」8월호에 발표, 문단의 주목을 끌고있다.
「해방 후 친일반역죄로 투옥되기도 했으나 같은 맹원이었던 박희도·장덕수의 설득으로 이제까지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전제한 김씨는 『작년 여름 일본 「와세다」대학교의 「오오무라」교수가 「시인 김용제의 궤적」이라는 장편 연구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나의 전향이 위장전향일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 연구의 대상이 된 나로서 대답하는 것이 책임일 것 같아 그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백적 친일문학론』이라는 이 글에 따르면 김씨는 동경에서 반일좌익 문학운동을 벌이다가 4년 동안의 옥고를 치르고 귀국, 38년11월 소위 「내선일체」를 표방한 일어월간지 「동양지광」의 주간 겸 편집장으로 초빙되었다는 것. 당시 사장은 3·1운동때 33인중의 최연소자였던 박희도였고 설산 장덕수가 고문이었는데 이들을 포함, 강영석(「동양지광」 객원)·나경석(언론인)·유진희(의사)·김씨와 일본인 「나가시마」(경기도 경찰부 경부)· 「후지따」(일 연정종신도) 등 8명이 「동아연맹조선본부」라는 비밀단체를 결성하고 해방이 될때까지 조선내의 학생운동 등을 지원·조직·지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동아연맹운동은 총본부를 일본에 두고 있었으며 다수의 일본인들도 참여했는데 이들의 조선문제에 대한 입장은 『조선을 독립국으로 하고 자립될 시기까지는 외교와 군사만 책임후견, 필요없다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그만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내의 동아연맹운동은 곧 독립운동이었으며 조선에서의 동아연맹운동은 치안 유지법으로 엄벌되었다는 것. 특히 「동양지광」을 간판으로 한 이 운동에는 고하 송진우(동아일보사장)·김대우(고급관리)·김홍량(황해도 대지주) 등이 후보맹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미발표 장편소설 『얼룩진 세월』(1천9백장)에 대충 기록했다고 밝히고 해방되던 날 『해방을 위해 그 순간까지 위장친일을 하면서 지하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위장」의식은 사라지고 「독립운동」관념도 죽어버렸으며 「친일」했다는 현실인식만 남았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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