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이기면 국가개조 동력 … 지면 청와대 개편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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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용산구청 직원들이 청파동 주민센터에서 투표소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선관위는 4일 오후 6시부터 사전투표함에 대한 개표에, 6시30분부터는 본 투표에 대한 개표에 들어갈 예정이다. [변선구 기자]

6·4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청와대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 일정을 잡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전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어느 때보다도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모들은 공·사석에서 지방선거에 관한 언급을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괜한 오해를 사 정치적 논란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심 어느 때보다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남은 3년9개월 모습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 참사(4월 16일) 이후 추동력이 약화된 국정운영이 다시 탄력을 받느냐, 아니면 무기력한 상황이 이어지느냐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과 과거 지방선거 결과를 고려하면 여권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다. 역대 5차례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 첫해인 1998년 선거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여당이 졌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에 치러진 6·2 지방선거에선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광역단체장 16곳 중 6곳(37.5%)만 가져갔다. 당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6.1%(한국갤럽, 6월 기준). 박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47%, 한국갤럽 5월 26~28일 조사)과 큰 차이가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역대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항상 고전했다”며 “세월호 사건까지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이 정도라도 버티는 건 어떻게 보면 박 대통령의 저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가 워낙 혼전 양상이라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방선거 걱정이 많은데,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했다.

 청와대에선 17곳의 광역단체장 중 새누리당이 9곳 이상 차지한다면 승리로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렇게 되면 세월호 참사로 주춤한 국정개혁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어 국가개조나 관피아(관료+마피아) 쇄신에 박차를 가할 동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월호 국면에서 야당이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민심이 다시 박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신호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세월호 참사 이전에 추진되던 규제개혁과 공공기관 정상화 등도 다시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무총리·국정원장 후보자 지명 등 인선에도 가속도가 붙게 된다. 선거 국면에서 쏟아졌던 청와대 참모진 사퇴와 개편 주장도 힘을 받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새누리당이 크게 패하거나 9석에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을 경우 후폭풍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우선 조각(組閣) 수준의 개각 요구에 직면하게 될 뿐 아니라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여권 내 힘의 균형추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친박근혜계에서 비박근혜계로 옮겨갈 가능성도 커진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비박계인 정의화 의장이 당선된 것처럼 7월 전당대회에서 비주류가 당권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 통치 스타일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선거 결과는 7월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새누리당 권력의 균열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국정의 우선순위로 잡고 있는 공공기관 개혁이나 국가개조 구상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정장악에도 누수가 생길 공산이 크다.

 여야 정치권에선 “여야의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지 않는 어중간한 선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선거 민심의 해석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소모적이고 지루한 논쟁이 이어지면서 국정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글=허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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