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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따라 두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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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바둑 격언에 ‘손 따라 두면 진다’는 말이 있다. 수가 짧은 사람이 전체 형세를 보지 못하고 상대방이 두는 수에 즉흥적으로 따라 두다 보면 결국 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보면 ‘손 따라 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침몰사고의 발생과 초기 구조의 실패는 과거 정권부터 쌓여온 적폐(積弊) 때문이라고 치자. 그러나 사고의 수습과 사후대책 마련에서 드러난 혼선과 졸속은 온전히 박근혜 정부의 위기 대처와 국정 운영 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사고 수습 과정은 우왕좌왕의 연속이었고, 정부조직 개편과 총리 인선 실패는 조급증이 부른 화(禍)였다. 전체 상황을 조망하면서 사태의 전개과정을 내다보지 못한 채 흡사 무엇에 쫓기듯 즉흥적이고 대증적인 조치와 대책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온갖 구설에 시달리고, 스스로 불신을 사게 된 것이다.

 급기야 오늘 치러지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마저 야당이 제기하는 ‘정권 심판론’에 여당이 ‘정권 수호론’으로 맞서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 호미로 막아도 충분한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일로 키운 셈이다. 이제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추진력이 좌우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 따라 두다가 어느새 바둑 전체를 망치게 된 형국이다.

 이명박(MB)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벌어진 광우병 촛불시위에 어물어물 손 따라 바둑 두듯 하다가 임기 첫해부터 국정의 추진동력을 잃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의욕적으로 내걸었던 ‘747 공약’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접고 말았다. 곧이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MB정부의 의욕마저 꺾어 놓았다.

박근혜 정부도 자칫하면 MB정부의 전철을 밟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정책 기능은 사실상 마비상태나 다름없다. 새해 들어 의욕적으로 내세운 경제혁신 3개년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온데간데없이 실종됐다. 그사이 겨우 살아날 듯한 경제는 다시금 침체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 산업생산이 전달에 비해 0.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빚어진 소비와 투자의 부진이 경기악화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물론이고 이젠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도 싸늘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경제 예측기관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0.1~0.5%포인트씩 낮춰 잡았고, 5월에도 소비와 투자의 부진이 이어질 경우 성장 둔화는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 경기침체가 온통 세월호 참사의 여파 때문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것이 사실이지만 추세적인 성장률 둔화의 더 큰 요인은 지난 3년간 계속돼 온 투자 부진이기 때문이다. 경제혁신 3개년계획에서 경기 회복을 위한 핵심 대책 역시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책이 세월호 정국에 묻혀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국가 개조를 천명했다. 말할 것도 없이 안전을 최우선의 국정 목표로 삼아 나라의 틀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안전불감증과 재난구조 시스템의 불통은 마땅히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이 국정 목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재난으로부터 100% 안전을 보장할 방법도 없거니와 그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할 길도 없다. 결국 여러 가지 국정 목표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을 중시하고, 국가 자원 배분에서 안전을 위한 지출의 우선순위를 높이는 정도가 현실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안전을 중시하되 재난 대비 이외의 다른 국정 목표도 충실히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무리 안전을 강화한다고 해도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피폐해진다면 그렇게 얻은 안전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에 문제가 됐던 고령화와 저성장은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적인 과제다. 그 대책을 마련하고 착실하게 추진하는 것은 재난 대비 못지않게 미래 세대에게 중요한 일이다. 경제혁신 3개년계획은 그 단초다. 세월호 참사가 비록 참혹한 재난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한 것도 아니고, 온 나라가 거기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국정 목표가 완전히 바뀐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진다. 무엇보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국정 목표의 경중과 시급성을 가려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의연하게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손 따라 바둑 두듯’ 국정을 운영했다간 작은 충격과 위기에도 매번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