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고해를 건너게 해줄 돌덩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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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27면

어느덧 6월이다. 어릴 적, 요맘때면 늘 아버지의 6·25 영웅담을 들었다. 꼬맹이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땐 아버지가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커가면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 얘기 말고 뭐 딴 거 없어요? 시시하게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해.” 투덜댔다. 우리 사이엔 이미 서열이 생긴 뒤였는데, 상관 같았던 아버지는 신통찮다 여겼는지 웃옷까지 걷어올리시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봐라. 총을 두 방이나 맞았잖아. 내가 이러고도 살았어. 잊을 수가 없다니까.” 그럴 것이다. 어찌 잊겠는가. 죽다 살아났는데. 그 고정 레퍼토리가 아무리 지겨웠어도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다.

세월호 사고 후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우는 날이 많았다. “스님, 2학년 3반 박지윤 좀 찾아주세요.” “스님, 2학년 6반 김동영, 살려주세요. 스님이 기도해 주시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문자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한 달이 다 되어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덕분에 찾아서 장례까지 치렀다는 감사의 인사도 함께였다. 인사는 나를 더욱 죄스럽게 했다. 얼마 후 또 다른 문자가 왔다. “2학년 7반 안중근, 스님, 중근이에게 엄마가 기다린다고, 이제 그만 올라오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청취자와 함께 기도하며 울었다. 함께 우는 일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울고,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오열하는 유가족을 보며 또 울었다.

사실 불교는 출세간(出世間)을 지향한다. ‘방하착(放下着)하라’, 즉 다 내려놓으라는 표현은 삶의 방향을 일러준다. 놓아버려야 분별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세상에는 놓아버리면 안 되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영역도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세월호의 비극이 그렇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3·1운동은 국가의 중요성을,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내 아버지가 6월만 되면 술잔을 기울이며 털어놓던 6·25전쟁도 그렇고 5·18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국가의 정신적 기둥이 되었다. 그 희생자들을 잊고서 어찌 헌법이 말하는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할 수 있겠는가. 4·16의 비극은 이 땅이 얼마나 고해(苦海)인지 말한다. 진도 앞바다뿐만 아니라 탐욕 넘치는 이 사회가 곧 고통의 바다라고 말이다.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안전의 날’로 정하자고 했다. 일각에선 그만 잊고 앞을 향해 나아가자고 한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것으론 부족하다.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물살이 너무 세 건너기 힘든 개천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개천을 건널 때마다 커다란 돌을 등에 지고 간다고 한다. 그래야만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건널 수 있어서란다. 어쩌면 3·1절, 4·19, 6·25, 5·18처럼 4·16이 우리에게는 고해를 건네줄 돌덩이가 아닐까 싶다. 4·16은 생명과 사랑, 용기를 가르쳐줬다. 이 아픈 희생을 등에 지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름다운 미래는 없다. 무겁고 힘겹지만 반드시 짊어지고 가야만 살 수 있는 아픈 기억, 그것이 세월호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 국가적 돌덩이를 등에 지고 가는 추모의 달이다. “내 무덤은 그대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는 노래(The Unknown Soldier) 가사가 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또 다른 무덤을 만들지 모른다. 그러니 부디 4·16을 기억하자.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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