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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살해 혐의 종신형 이한탁씨, 무죄 석방 가능성 커졌다

미주중앙

입력

"과거 검찰의 증거 자료가 불확실하다는 것에 동의합니까?"

"동의합니다."

딸을 살해하기 위해 수양관에 불을 질렀다며 지난 1989년 이한탁(80)씨를 방화 살인죄로 기소했던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 검찰이 25년만에 자신들의 증거가 과학적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29일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 있는 연방법원 펜실베이니아 중부지법에서 열린 이씨의 재판 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판사는 과거 검찰이 제출했던 증거들이 지금은 활용되지 않는 옛 화재 수사방식에 근거한 것임을 지적하며 검찰에 동의 여부를 질의했고 이날 심리에 참석한 브래드 슈미트 먼로카운티 검사는 이를 인정했다.

이날 열린 심리는 이씨에게 유죄를 판결하고 종신형을 선고토록 한 초기 재판에 대한 유효 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증거 심리(Evidentiary Hearing)'다. 즉 초기 재판에서 채택됐던 증거의 정확성을 재확인하는 절차다.

이날 법정 증언을 위해 플로리다주에서 온 화재 감식 전문가 존 렌티니 박사는 검찰 측의 증거 자료에 대해 조목조목 이의를 제기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증거는 사건 당시 이씨가 입었던 옷에 묻어있던 발화성 물질이다.

당시 검찰은 이씨의 셔츠와 바지 장갑 등에 휘발유와 화학물질 등이 합성된 발화성 성분이 검출됐다며 이를 근거로 이씨가 방화를 미리 계획했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렌티니 박사가 실시한 성분 검사에서는 셔츠와 바지 장갑에서 각기 다른 물질이 검출됐다. 렌티니 박사는 "나의 조사 결과와 차이가 있어 당시 이 검사를 맡았던 화학전문가에게 '이씨의 옷에서 검출된 성분이 모두 같은 것이냐'고 공식적으로 질의했지만 명확한 답변 대신 '비슷한 성분이다'는 대답만 들었고 검찰에 성분 분석자료를 요구했으나 이미 해당 자료는 분실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검찰이 핵심 증거마저 분실해 버린 것이다.

검찰 측 증인으로 참석한 펜실베이니아주 경찰 과학수사반 소속 경관은 "검찰의 보고서와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슨 판사가 '증거에 대한 재검사를 직접 실시했는가'라고 묻자 경관은 "아니다"라고 답했고 '당시의 화재 수사 기술과 지금의 기술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한가'라고 묻자 그는 "지금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의 증인마저 새롭게 실시된 조사가 더 확실하다고 시인한 셈이다. 이로써 이씨의 무죄 석방은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칼슨 판사는 이날 심리 결과를 바탕으로 상급법원인 3순회법원에 권고장을 제출할 예정이며 담당 판사는 이 권고를 토대로 이씨의 무죄 석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방법원 판사의 권고는 이변이 없는 한 상급법원에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이날 심리에는 법원의 이례적인 승인으로 이씨가 출두했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교도소 밖으로 나온 첫 외출이다.

특히 칼슨 판사는 교도소 측에 보낸 이씨의 출두 명령서에 "수의 대신 사복을 입힐 것"을 지시해 이씨는 이날 흰색 셔츠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참석했다. 피곤한 표정이었으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이씨는 통역관의 도움으로 이날 진행된 심리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이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피터 골드버거 변호사는 심리를 마친 뒤 손경탁 구명위원장 등 이씨 구명위 관계자들에게 "매우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 측도 추가 증거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재심이나 항소는 더이상 없을 것"이라며 "오늘 심리 결과에 만족하며 무죄석방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심리에는 이씨의 여동생 이한경씨도 참석했다. 이씨는 "죄없는 사람이 누명을 쓰게돼 지난 세월 동안 가족 모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늘 심리에서 희망이 보여 가슴이 벅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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