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연주자는 악기로 말한다|「필라델피아」교향악단 이끌고 내한한 세기의 거장「유진·오먼디」옹|"명 지휘자는 태어나는 것" 대담·이강숙 교수(서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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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오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의 서울 중구 정동 미 대사관저. 푸른 녹음 속에 자리잡은 드넓은 응접실에는 번잡한 도심의 한구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조용함이 깃들여 있다. 『아, 안녕들 하십니까.』짧게 깎은 부드러운 흰머리에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은 중키의「오먼디」옹이 넓은 마루를 가로질러 걸어온다. 왼쪽다리가 불편한 듯 했지만 엷은 하늘색「셔츠」에「올리브·그린」의「수트」차림은 무척도 정결하다. 27, 28일 중앙일보·동양방송과 서울시 주최의 미국「필라델피아·오키스트러」내한 연주를 지휘하기 위해 26일 한국에 온 세기의 거장「유진·오먼디」옹.80을 바라보는 그는 피로한 기색도 없이 시종 인간미 넘치는 풍부한「제스처」와 미소로 이강숙 교수(서울대·음악이론)를 만났다.
이=뵙게되어 기쁩니다. 우선 지휘자가 되고싶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묻겠습니다. 훌륭한 지휘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오먼디」=상당히 어려운 질문이군요.
여러 가지를 얘기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휘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는 것입니다.「토스카니니」「R·슈트라우스」「브루너·발터」「말러」등 유명한 지휘자가 모두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지휘를 하려면『우선 시작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세기적인 훌륭한 지휘자가 되신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또 연습은 어떻게 하시는지요.「오먼디」비결은 없습니다. 나는 지휘법을 배운 적도,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지휘자는 악곡 속에 담겨진 진실을 스스로 느껴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누구도 지휘법을 가르칠 수 는 없지요.
이=「오키스트러」단원들에게는 어떤 훈련을 시키십니까.
「오먼디」=연주자들은 제대로 된 완전한 교육을 받도록 합니다. 그리고는 악보를 집으로 가지고가 연습을 하드록 하지요. 연습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것입니다. 서로의 연주를 듣는 것은 곡 전체의 통일성과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또 나는 연주자는 악기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불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현대의 지휘자로 누가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먼디」=「트스카니니」!그는 천재지요. 나도 그처럼 되고 싶어요.(웃음)
이=현대의 작곡가로는 누구의 작품을 좋아하시는지. 현대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오먼디」「스트라빈스키」「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물론 현대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주 터무니없는 곡들을(전위곡들을 말하는 듯)만나게되는데 그런 때에는 어이가 없어요.
이=음악가로서의 이상적인「라이프·스타일」이 있다면…
「오먼디」=청결한 생활. 술이나 담배, 그밖에 잡기에 시간을 뺏긴다면 공부할 시간이 없지요. 내 자신은 아직 담배를 입에 대본 일이 없습니다.
이=올해 79세지요. 은퇴를 생각해 보십니까. 최근에는 어느 정도의 일을 하십니까.
「오먼디」아니, 78세지요.1년이나 더 늘려 늙었다고 하지 마시오.(웃음)내가 쓰러지는 날 은퇴를 하게되겠지요.
요즈음도 1주에 4,5회 의 지휘를 하고 2주마다「레코드」녹음을 합니다. 연간 1백∼1백50여 회의 연주회를 하는 셈이지요. 나는 일을 사랑하고 그것을 즐기니까요.2년 전 왼쪽다리에 수술을 받아 운동은 안 하지만 늘 어디서고 아내「마거레터」가 돌봐주고 있어 건강합니다.
이=만일 선생께 한국교향악단을 지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1∼2년 사이에 세계적인 악단으로 키우실 수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오먼디」=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우선 상당한 수준의 연주자를 확보해야 하겠지요. 또 여러 사람들께 상당히 많은 것을 요구해야할 것 같고….나는 아주 재능이 있고 훌륭한 한국출신 연주자가 여럿이 구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바이얼린」을 하는 김영욱, 또 젊은 여성(정경화를 말하는 듯)이 있고, 그 남매들도 있지요.
이=지휘자「오먼디」…라면 대단한「로맨티시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오먼디」=네,「로맨티시스트」지요. 나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깊이 사랑하니까요.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건축물, 아름다운 음악, 특히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아주 사랑하지요.(웃음)
아름답고 멋진 나라인 한국에서 연주를 하게되어 기쁩니다.
이=처음 방문하신 한국에서 즐거운 일이 많으시기를 바랍니다.【정리=박금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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