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성건성 안전점검 … 의료시설 27곳 중 19곳이 허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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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병원. 경기도 감사실 직원 2명과 소방서 안전검사요원 2명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경기도 특정감사반이었다. 일주일 전 이 병원이 민간 소방점검업체의 진단을 받아 ‘이상 없다’고 제출한 안전점검보고서가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감사반은 화재경보수신반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상’이라 기록된 보고서와 달리 불이 나면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는 장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사고와 재난에 대비한 각종 시설의 설비·체계만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제대로 갖췄는지 들여다보는 안전점검 자체에 구멍이 뚫렸다. 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지고, 때론 결과 보고서가 허위로 꾸며지고 있다. 8~16일 이뤄진 경기도 특정감사반의 불시 점검에선 경기도 의료시설 27곳 중 19곳(70.4%) 보고서 내용이 실제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창문 밖으로 탈출할 때 쓰이는 기구가 없는데 ‘있다’고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 28일 불이 나 21명이 사망한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은 화재 일주일 전인 21일 장성군 보건소의 안전점검을 받았다. 세월호 사고가 난 뒤 주요 시설에 대해 이뤄진 집중 점검의 하나였다. 보건소 이명자 예방의학계장 등 2명이 오후 1시30분쯤 와서 두 시간가량 점검했다. ‘화재 등 사고관련 안전교육 실시 여부’ ‘모의소방훈련 실시 여부’ 등 31개 항목 모두 ‘O’ 표시됐다. 그러나 불이 나자 요양병원 직원들은 우왕좌왕이었다.

병원뿐 아니라 대형마트나 극장처럼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다중이용시설) 점검도 마찬가지다. 경상남도와 통영시, 통영관광개발공사는 지난달 23일 한려수도에 설치된 통영케이블카를 점검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5일 오전 11시27분 승객 70여 명을 태우고 움직이던 케이블카들이 갑자기 멈췄다.

근처 가로등에서 누전이 돼 케이블카를 조종하는 전기장치가 망가졌다. 통영관광개발공사는 그 뒤에야 가로등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케이블카 전기 시스템을 분리하는 공사를 했다. 사고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정부가 너무 짧은 시간에 방대한 점검을 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어 점검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 고양시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말까지 공무원 19명이 2308개 다중이용시설을 조사 중이다. 휴일을 빼고 25일 동안 한 명이 하루 평균 다섯 곳을 점검해야 한다. 지난 26일 불이 난 고양종합터미널은 이달 중순에 진단을 받았으나 화재가 발생한 지하 1층은 입점 업체가 없다는 이유로 건너뛰었다. 고양시 관계자는 “시간이 없어 일일이 확인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 2월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졌을 때 “붕괴 우려 다중이용시설을 전부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 하루 뒤 보고하라”고 각 지자체에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지자체들은 “시간이 없어 눈으로 대충 훑어보고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했다. <본지 2월 22일자 10면> 연세대 조원철(사회환경공학) 교수는 “ 인력이 부족해 전수조사는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며 “큰 사고가 났을 때 재연 가능성이 없는지 우선 정밀점검하는 대상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대석·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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