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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북한 경제관리개선조치 10개월의 평가와 향후 전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려대 북한학과 南成旭)

최근 북한경제 변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한지 10개월이 되면서 각종 후속조치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지난 50년대 발행 경험이 있는 인민경제공채를 5월 1일부터 발행키로 하였고, 농민시장(Farmers Market)의 명칭에서 농민이란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시장경제(Market Economy)와 같은 자본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북핵 위기로 인하여 시장경제 지향적 정책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으나 기존의 국가계획경제에 주는 영향과 충격은 단순하지 않다.

특히 최근 북한당국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각종 경제개선 조치들은 북측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개혁·개방적 의의를 포함하고 있는 만큼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사회의 약탈적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평가했던 채권을 발행키로 한 것은 등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연상할 정도로 실용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경제건설의 필요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키로 한 것은 분명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로 외부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금조달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경제당국자들이 경제정상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표시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또한 경제개혁조치가 인플레이션 조짐을 보임에 따라 서둘러 공채를 발행해 늘어난 통화량을 환수하려는 의도도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의 화폐경제이론에 입각한 정책으로 매우 바람직하다.

가장 긍정적인 조치는 농민시장의 활성화로서 경제개혁의 초점이 시장기능의 강화를 겨냥한다는 측면에서 향후 북한경제 개혁의 단초로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회주의 상품유통의 일환으로 인정함으로써 당국이 시장의 가격조절 기능을 수용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유통상품의 범위를 공산품으로 확대한 것은 정부의 역할 축소와 민간의 기능을 공식화한 것으로 향후 농민시장의 기능을 포괄적으로 확대하여 경제건설의 중요한 축으로 활용한 계획도 점쳐 볼 수 있다.

한편 7.1 조치이후 정책과 조치들이 구체적으로 시행됨으로써 긍정적 현상과 부정적 현상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7.1 조치의 진행동향과 북한당국의 후속정책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분류하여 파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적 긍정적 측면이다. 첫째, 소득체계의 개선에 의한 주민들의 근로의식의 변화다. 기존의 사회주의는 집단주의를 기초로 평균주의를 지향하였기 때문에 노동의 효율성이 미흡하였다. 표준임금의 대폭적인 향상과 임금의 능력별 차등 지급이 도입된 결과 일한 것만큼 임금을 분배를 받지 못하는 현상들이 개선되고 있다.

조치 발표이전에는 생산기업소에서 생산목표에 미달하여도 노임의 60% 정도는 받을 수 있었으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나 7월 이후에는 주민들이 급여를 100% 받아야만 살수 있기 때문에 생산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건달군'이라 불리던 한량들이 발붙이기 힘들게 되었다.

북한이 7.1조치에 따라 신규로 제작한 「로동자생활비기준표」에 따르면 직종별로 임금의 인상비율이 상이하다. 군인들의 월급 인상율은 최소 25배에서 최고 31배까지 인상함으로써 교원(15배), 공무원(20배) 및 일반노동자(18배)들보다 많이 올랐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동일직종에서 3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무기능(無技能), 기능, 고급기능으로 나누어진다. 이들간의 임금 격차는 30%선이다. 예를 들어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굴진, 채탄노동자의 경우 무기능이 3,140-3,770원, 기능이 4,400-5,040원인데 반해 고급기능은 5,680-6,000원에 달해 기능은 84%, 무기능 근로자의 월급은 고급기능근로자에 비해 63%에 그치고 있다.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 가에 대한 임금 격차는 결코 적지 않다. 같은 탄광에 무기능 일반근로자의 월급이 2,000원선에 그치고 있는 것은 육체 노동근로자 중에서도 단순 노동자의 급여는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국은 탄광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자극하기 위해서 '누진생활비' 제도를 도입하였다.

기본노임을 3,000∼6,000원으로 책정하고 기본로임은 열심히 일할 경우 20일만에 정량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10일의 근로는 추가수입을 얻도록 기준을 정하였다. 대략 70% 정도를 기본노임으로 결정되고 나머지 30%는 누진제로 노임을 받도록 함으로써 근로자들간의 임금격차가 발생하도록 하였다.

둘째, 국정가격의 현실화를 통한 제품생산의 정상화이다. 그간 북한에서 제품의 가격책정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행정지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었다.

즉 국가가 인민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시책에 의해 전반적으로 원가보다 훨씬 낮게 책정되어 있던 가격 때문에 실제 원가를 양과 질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특히 저가의 의·식·주 가격이 정상원가를 반영함으로써 생산자들의 소득증대와 근로의욕이 살아나고 있다.

쌀의 경우 kg당 40전에 수매해 8전에 의해 판매함으로 가격이 생산비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았으나 7.1 조치이후 kg당 40원에 수매해서 44원에 판매함으로 쌀 가격에 생산비가 정확하게 반영되어 농민들의 영농의욕이 높아지고 있다.

석탄의 경우 조치이전에는 t 당 40원을 받았으나 이제는 원가계산에 따라 1,600원으로 현실화되었다. 광부들이나 탄광기업소 입장에서는 제품의 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가격이 정상화되었기 때문에 품질이 좋지 않은 상품은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활동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국정가격과 농민시장 가격의 격차가 해소되면서 물자 유통이 원활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국가가 쌀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상점에도 식료품이 없어 이런 물자가 있는 농민시장에 의존했으나 지금은 닭고기와 계란을 비롯한 식료품들이 그런 대로 공급되고 있는 국영상점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일부 제품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과거처럼 농민시장에 자주 가지 않아 좋다는 반응을 보였고 있다.

셋째, 기업소의 경영관리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각 기업소별로 독립채산제가 강화됨으로써 '노는' 근로자들이 줄어들고 생산업무에 전념토록 함으로써 경제 전반에 창의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소의 독립채산제 강화는 당국의 보조금을 절약하여 정부의 재정적자를 축소시켰다. 이로써 정부는 경제건설 자금의 확보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 이외에 부정적 측면도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통화량 증발에 따른 인플레이션 만연이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물가·임금 인상에 따른 문제점 보완을 위해 식량과 생필품 등 공급물량 확보에 주력하면서 암시장에 내다 파는 행위를 막기 위해 기업소와 상점의 재고조사를 수시로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평양 이외 지역들인 신의주·무산 등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지역의 경우 농민시장의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또한 곡물·남새(채소)·고기 등의 필수 식료품보다 의복(양복 60배, 내의 80배), 안경(50배), 술(50-1백배) 등 소비재 가격이 대폭 인상돼 먹는 문제는 많이 완화되고 있으나 경공업제품의 소비는 위축되고 있다.

또한 물가가 오르면서 일부 주민은 임금만 가지고 생활비 조달이 어려워짐에 따라 공장. 기업소 업무보다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도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직종은 임금이 올랐지만 과거 당국이 무상으로 제공하던 각종 서비스를 유상으로 전환함으로써 실질임금은 명목상 인상율보다 인상폭이 훨씬 낮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각 기관들이 「국가가격계획조정국」에 임금과 생활비 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빈번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은 가격 현실화와 통화량 증발에 따라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며 긍정적 측면이 부정적 측면을 압도함으로써 7.1 조치는 그럭저럭(Muddle through)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량과 질이 높은 사람은 물질적, 정치적으로 걸맞은 평가를 받아야 하며, 배분을 통한 평균주의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당초 도입 취지가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는 성과를 올리면서 전반적으로 큰 혼란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성공여부는 정부의 물자 공급능력 증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속히 북핵 위기가 해결되어 외부의 자본투입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는 가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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