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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석남사|심산유곡에 잠겨 수심을 닦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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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왜 입산하셨나요?』
『인연이지요.』
『산 속에 묻혀 사시기 외롭지 않습니까?』
『명심견성하기 위한 걸요.』
석남사는 우리나라의 유수한 비구니(여승)절. 경남 언양에서 가지산 속 깊숙이 30리를 들어가 60여명의 여승들만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고찰이다. 행정구역상으론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요즘에는 하루에 몇 번 털터리「버스」가 절 밑 마을까지 왕래하지만 수년 전만 해도 인적이 드물고 물소리 낭랑하기 이름난 산사였다.
「부처님 오신 날」을 2, 3일 앞두고 있으나 이 절에서는 평소와 별로 다름이 없다. 워낙 멀고 궁벽져서 드나드는 신도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등은 1백여개 이미 만들어 놓았고 약간의 산채도 다듬는 일이 끝났다. 도시 주변의 버글거리는 사찰과는 영 딴 세상이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해졌다고 할까. 딴 절에서 일부러 찾아와 공부하던 50여명의 여승들이 불가의 가장 큰 명절을 맞아 각기 제 절로 돌아간 뒤여서 한결 식구가 단출해진 것이다. 정말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게「절간 같은 고요」가 깃들여 있다. 매일같이 쓸고 닦아 정갈하기 그지없다.
『스님들은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하루에 3, 4시간밖에 잠잘 틈이 없어요. 우리가 마음을 닦고 시주에 보답하는 길은 수도하는 일인데 쉬면서 무슨 정진이 되겠어요.』
『더러 외출은 하지 않나요?』

<가장 큰 명절 맞아 부산>
『선방에 앉아 있노라면 1초에도 몇 번 서울 나들이를 할 때가 있지요.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빠르고 약한 것인데, 그런 잡념 속을 헤매다 보면 시간만 다 흘러가 버리고 마음은 밝아지질 않습니다.』
엄격하고 꽉 짜인 석방의 단체생활이다. 평소의 일과는 새벽3시부터 시작된다. 그 날 당번은 더 일찍 일어나 수세(세수)하고 마당에 나와서 3시를 기해 목탁을 치며 도량석(절 내를 돌아다님)을 한다. 그리고 한편에선 종두(종치는 소임)가 삼십삼천을 울리는 동안 모든 승려들은 법당에 모여 예불을 드린다
새벽 4시. 비객은 선방으로 가고, 학인은 강원에서 경을 읽고 쓴다. 5시30분부터 30분간은 도량의 소지. 각기 맡은 구역이 정해져 있으며, 그런 갖가지 소임은 대중공사(승려회의)을 통해 3개월씩 방을 짠다.
6시에 아침공양(식사)을 하고 7시부턴 다시 글공부와 입선이 시작돼 10시에 마친다.
10시30분에 마지(부처님께 올리는밥)를 올리고 11시에 점심을 든다 하오 l시부터 4시까지 글공부와 참선을 하고 5시에 저녁공양. 6시30분에 저녁 예불을 드리고 7시30분부터 글공부와 참선을 시작하면 학인은 밤10시에, 비객은 11시에 비로소 하루의 공식 일과가 끝나는 것이다

<밭일·부엌일부터 시작>
빨래하는 날과 머리 깎는 날도 따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때때로 울력(작업)도 해야 한다.
채소를 가꿔야하고 산나물도 뜯고 땔나무도 모두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련하도록 돼 있다. 기왓장을 나르고 토벽일도 한다.『하루 일하지 않았거든 하루를 먹지도 말라(일일부작 일일불식)』는 엄격한 가르침을 계율처럼 철저히 지키며 산다.
『동자승이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여긴 모두 공부하는 사람들뿐이랍니다.』
『기왕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보살(여신도)을 두어 시공(밥짓기와 다듬이질 등 잡일을 하는 것)하게 하지 않습니까?』
『산중생활의 첫 걸음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배워두는 것이지요 .중이 새로 되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데, 시집살이는 어른 모시고 하라 하지 않습니까.』
입산하면 3년간 행자노릇을 하기 마련이마다 기초 교육을 받으면서 과연 승이 될 것인지 스스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유예기간이다. 반두(부엌일)와 채두(밭일)및 종두는 모두 행자들의 소임이다 그 중에 아직「숏·커트」의 단발머리는 입산한 지 1년도 채 못된 신입생. 1년이 넘어야 사미계를 내려 삭발함으로써 승려가 될 수 있는 자격을 1차로 부여한다.

<수도하면 언제나 안락>
수행자로서의 관문은 역시 구족계(비구제)다. 이 때부터 한사람의 승려로서 자격을 갖추는 것이며 이 수계일(법린)이 곧 불문에서의 위계가 된다 그리고 학인의 강원생활은 통상 5년.
그런 반면에 언제 삭발했느냐 싶게 절을 떠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생미역이나 김을 잘 얻어먹는 절』을 찾아가기 바라는 이도 없지 않다.
더구나 여성이기 때문에 불문에 들어오기 결정했어도 주위 사람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성가실 만큼 찾아오고 또 찾아와 시련의 큰 고비를 다부지게 겪는 것이다. 승려로서 지켜야하는 계율조차도 비구니에게는 비구(남승)의 갑절인 5백계가 명시돼 있다.
『산중의 즐거움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읍니까?』
『염념보제심이면 처처안락국이라 했지요. 신심을 바로 갖고 수도하면 어디서나 안락한 곳이 되지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내분소감 묻자 선문답>
『자기 마음을 밝히고 자기 성품을 보는 것이 명심견성인데 ,이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 가다보면 높은 절벽에 부닥쳐 애태우게 됩니다. 나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지경에 막혀버리는 것이지요. 이 지경에 이르기 위해 온갖 망상·분별을 끊어버리고도 이 벽을 깨치기 위해 참선 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불교 신앙의 목표는 성불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불은 믿음만 가지고는 되지 않으며, 육체적 수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관행적 수행이 더욱 중요하다.『사람이 항상 부처님을 따라 다녀도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하면 장님과 같다』는 것은 화엄경의 말이다.
석남사를 떠나면서 법희 주지스님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요즘 서울의 조계종 총무원 소식이 궁금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구름과 비가 하늘을 가린들 해와 달빛을 가리움 것인가』
(하방운우차은한 월일상휘옥자거), 선문답 한마디뿐이다. <글 이종석 기자 사진 김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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