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없는 다섯 할머니에|숨은 효도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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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의지할 곳 없는 이웃할머니 다섯 분을 10년 동안이나 남몰래 보살펴 아들노릇을 해온 서울 북부경찰서 민원봉사실 근무 박정학 순경(38)이 어버이날인 8일 서울시경으로부터 모범효행경찰관으로 표창을 받는 것과 함께 경장으로 1계급 특진했다.
박 순경이 불우한 노인들을 보살피게 된 것은 작년 건국대 2년을 중퇴할 무렵-.
집안사정으로 대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음독자살을 기도했다가 소생한 박 순경이 인근 제기동 성당의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흐느끼고 있을 때 한 할머니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된 것.
이 할머니는 자식도 없이 삯바느질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불우한 처지의 이진순씨(70년 사망당시 65세). 이같이 맺어진 이 할머니와의 인연은 68년 경찰관시험에 합격된 후에는 물론 70년 이 할머니가 고혈압으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박 순경은 당시 이 할머니의 장례비15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에 있는 천주교회 묘지관리인을 찾아가 딱한 사정을 호소하고 묘지비를 2년간 나누어 갚는 조건으로 이 할머니의 장례를 맡아 치렀다.
이 같이 박 순경이 보살펴 드리고 있는 노인들은 이승린(77) 우오순(78) 박은례(76) 곽장녀(70) 이마리아(65)할머니 등 모두 다섯 분.
박 순경이 67년부터 지금까지 11년간 보살펴 드리고있는 이승린 할머니(제기동 174의3)의 경우 3평짜리 단간 사글세방에서 삯바느질로 김용화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으나 김 할머니가 75년 사망하자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며 양로원으로 가겠다는 이 할머니를 위해 30만원을 들여 전세방을 얻어 생활비를 대가며 모시고 있다. 또 이 할머니가 1년 전에 사후걱정을 하자 양주군에 12평짜리 묘소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박 순경이 이같이 외로운 할머니들만을 위하자 71년에 결혼한 부인 김우분씨(33)는 처음에는 짜증도 많이 냈고 불평도 많이 했으나 이제는 남편을 도와 부업으로 서울역 앞에 「스낵·코너」를 운영, 수입을 덜어 이들을 위해 쌀·연탄 등 뒷바라지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는 것.
박 순경은 이 같은 선행에 대해 『어려서부터 내 부모가 귀중한 만큼 남의 부모도 존경하라』는 부친 박인업씨(70년 사망)의 가훈에 따랐을 뿐이라며 효행표창에 대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김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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