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대 황금수의도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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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서 못다 누린 호사를 저승에서나마 누리시라는 염원을 담은 수의(壽衣). 장례 방법에 따라 땅 속에서 썩거나 불에 타버리는 '1회용'이다. 그런데 이 같은 수의가 자녀의 효심과 노인의 장수.발복(發福)을 겨냥한 '효도 마케팅'에 휘둘리면서 수천만원에서 1억원대의 초 고가품까지 나왔다.

◇ 한벌에 1억원까지=대통령 부인의 한복을 전담했다는 서울 삼청동의 Y한복. 이곳은 윤년마다 주문을 받아 수의를 짓는다. 재료에 따라 충청.전라 지역의 남녘포는 1천5백만원, 안동포는 2천만원, 강원도 강포는 2천5백만원이다. 디자이너 李모씨는 "주로 고위 공무원과 기업인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개량 한복으로 유명한 J사도 1천만원대의 수의를 주문받아 만든다. 대표 李모씨는 "안동포로 수의를 만드는데 주문량이 제법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주문자를 밝히지는 않았다.

경북 안동의 A삼베는 지난해부터 1억원짜리 '황금 수의'를 판매 중이다. 안동포 수의에 황금가루를 뿌린 것으로, "세월이 흐르면 유골이 황금색으로 변한다"고 업체 측은 주장한다. 황골(黃骨)은 명당에서 나타난다는 현상인데, 이를 겨냥한 마케팅이다. 대구의 C산업도 안동포 황금원단으로 제작했다는 수의를 1천8백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고가 수의에 상주들은 곤혹스럽다. 경기도 벽제화장장에서 지난 2일 어머니를 화장한 이성만(53)씨는 "3년 전 경남 마산의 장의업자 소개로 2백70만원에 수의를 장만했다"며 "부모님이 입는 마지막 옷인데 더 좋은 것을 못 해드려 죄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짜 논란에 규격표준 없고=자녀의 효심과 부모의 미안한 마음을 노린 '수의 사기'도 판친다. 경기도 구리시의 金모(71)씨는 병석에 있는 남편용으로 1백87만원을 주고 노인정에서 수의를 샀다. 건강식품이 덤으로 따라왔다.

경기도 성남시의 朴모(69)씨도 분당의 한 예식장 행사장에서 2백만원에 수의를 샀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고 생각했다. 장례식 때 장의차까지 서비스한다기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金씨와 朴씨가 산 수의는 전문가에게 분석 의뢰한 결과 나일론까지 섞인 중국산으로 20만원대 제품이었다.

서울 구로구의 수의판매상 김익한(골든코리아)씨는 "노인들이 고급품이라고 가져온 제품은 대부분 중국산이었다"며 "나일론이 섞여 썩지 않고 불에 태워도 찌꺼기가 남는 불량품도 있었다"고 말했다. 안동포와 관련, 경북 안동시 임하농협의 박미자 대리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안동포가 1년에 5천여필인데 시중에는 3만여필분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가짜가 판친다는 얘기다.

한국원사직물시험연구원 측은 "품질검사는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시중에 유통 중인 수의 중 품질이 검증된 것은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측도 "업체 측의 요청이 없고, 소비자 입장에서 중요도도 떨어져 규격표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수의=버선에서 겉옷까지 대략 20여종으로 구성돼 있다. 남자의 경우 바지.저고리.속바지.두루마기.도포.멱목(얼굴가리개).악수(손싸개).버선.신.오낭.소렴금.대렴금.천금.지금.베개 등으로 구성된다. 여자는 저고리.두루마기 대신 속곳.단속곳.치마.저고리.원삼 등이다. 재료는 변색되지 않고 잘 썩는 삼베가 널리 사용된다.

장정훈.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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