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제58화>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 40년대 「문장」지 주변|부인의 가출|정비석(제자 정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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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분가한지 10년째 되는 1926년에 이르러 재산보다도 빚이 더 많아지게 되자, 김동인(금동)은 자기 손으로 가산을 다시 일으켜 볼 생각에서, 보통강 벌 수리개간사업에 착수하였다. 보통강변에 자기소유의 황무지가 수10만평 있었기 때문에, 수리관개사업을 일으켜서 일약 대지주가 되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로서는 착상인 즉 매우 기발한 착상이었다. 그것이 뜻대로 되었다면 김동인은 일약 졸부가 됐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방탕밖에 모르던 서생이 그런 엄청난 사업에 성공할 리가 만무하였다.
그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동인은 채권자들에게 집까지 빼앗겨버리고, 부인과 어린 자식들을 여동생 집에 맡겨버린 채 자기는 서울로 도망을 쳐 올라와 하숙생활을 하면서 반년간을 고스란히 마작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반년 후에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지만,, 그때에도 집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마상이」를 타고 대동강 상에서 자취생활을 해가며 한 달이 넘도록 낚시질만 하고 있었다.
이에 부인은 환멸이 느껴져서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가출을 해버렸으므로, 김동인은 동경으로 부인을 뒤쫓아가서 어린 딸만 데리고 돌아왔다.
김동인은 마누라에게 버림을 받자, 배신한 마누라를 원망하는 대신에 『무능자의 아내』라는 소설을 썼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어버린 어린 남매들을 슬기롭게 키워나가기 위해 그로부터 몇 해후에는 『아기네』라는 역사이야기를 써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읽혀주었다.
마누라에게 버림을 당한 뒤에는 돈이 아쉬웠던지 영화 흥행에 손을 대어 평안남북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영화배급도 해보았고, 외국영화 수입에도 손을 뻗어 보았으나 그것 역시 실패로 돌아가 경제적으로는 거의 밑바닥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작품생활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순전히 원고료로만 생활을 해가자니 수입이 좋은 신문 연재소설도 쓰게 되었는데 동아일보에 연재한 『젊은 그들』과 조선일보에 연재한 『운현궁의 봄』올 비롯하여 『대수양』『해지는 지평선』동 일련의 역사소설을 쓴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김동인온 한평생을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살아왔으나 일생에 취직을 했던 일이 꼭 한번 있었다. 조선일보에 역사소설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면서 한 때 조선일보의 학예부장으로 취임했다가 40여일 만에 책상을 뒤집어엎고 나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사정을 『조선일보 50년 사』와 당시의 편집국장이었던 주요한의 증언에 의거하여 좀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조선일보는 1920년에 창간된 이래로 10여년 간이나 재정난에 허덕이며 발행인을 연방 바꿔오다가, 33년에 평북 정주출신인 광산왕 방응모가 발항권을 인계해 받음으로써 차차 지반이 굳어지게 되었다.
발행인 명의가 방응모로 바뀐 것은 33년4월26일의 일이었는데, 김동인이 동지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기 시작한 날짜도 4월26일인 것을 보면, 방응모는 신문을 인수함과 동시에 문화부문에서도 일대혁신을 불러일으키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아니, 문화부문뿐만 아니라 인사면에 있어서도 같은 해 8월1일에는 주요한을 편집국장으로 초빙해왔고, 그로부터 며칠후인 8윌29일에는 이광수를 부사장으로 모셔왔다. 말하자면 조선일보는 평안도 출신 인물들이 판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김동인이 연재소설을 쓰면서 학예부장으로 취임한 것도 바로 그런 바람을 탄 것이었다. 그가 격에 어울리지 않게 월급장이로 들어갔던 것을 보면, 그 무렵의 그의 생활이 어지간히 곤궁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는 모처럼 학예부장으로 취임했다가, 어찌하여 40일도 채 못되어 책상을 뒤집어엎고 나오게 되었던 것일까. 그때의 자세한 사정을 그 당시의 편집국장이었던 주요한에게 들어보기로 하자.
주요한의 회고담에 의하면, 김동인 자신이 학예부장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김동인은 그 오만불손한 태도가 방응모의 눈에 거슬려서 쫓겨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오만 불손한 태도」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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