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통가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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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글·사진 「누쿠알로파」=허준 특파원】우리 나라 참치 잡이 원양어선 기지가 있는 미국령 「사모아」에서 20인승 쌍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남남서쪽으로 2시간쯤 날자 망망한 바다 위에 보일락 말락한 조그만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남태평양지역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왕국 「통가」의 북단「바바우」제도. 조그만 쌍발기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녹색의 산호섬과 초호를 아래로 다시 2시간 가까이 날아 이 나라 수도 「누쿠알로파」가 있는 「통가타푸」섬에 도착했다.

<공해 없는 절승의 군도>
비행장 골주로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온통 야자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누쿠알로파」공항은 마치 우리 나라의 조그만 시골역사를 연상케 한다. 간간 돌리는「프로펠러」소리 이외에는 소음이나 공해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남국 땅이다.
서구인으론 처음 1773년 이곳에 발을 디뎠던 영국의 「제임즈·쿡」선장은 「통가」를 『다정한 섬나라』라고 했었다.
갖가지 향기로운 꽃과 무성한 나무에 둘러싸인 집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평화로운 생활양식, 그리고 「리드미컬」한 말씨와 즐겨 노래를 부르는 친절하고 상냥한 원주민들에게 반한 「쿡」은 그렇게 명명했었다.
공항에서 20km쯤 떨어진 「누쿠알로파」까지 편도 1차선의 도로는 먼지투성이의 시골길이지만 길 양쪽은 갖가지 열대수목과 꽃들로 덮여있고 간혹 말을 탄 소년들이 유유히 길을 가고있어 이 나라의 평화로움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나라 전체가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태평양지역을 다스리던 모든 신의 우두머리 「마우이」대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낚시를 하다가 바다 속에서 낚아 올린 것이 「통가」였다는 전설이 그럴듯하다.
실상 「통가」는 「폴리네시아」어로 「남쪽」이란 뜻이지만 「사모아」어로는 「정원」이란 뜻이다.
이 「정원」왕국은 1백69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돼있지만 그나마 사람이 사는 곳은 40개가 채 안 된다.
가장 큰 섬 「통가타푸」엔 전체인구의 3분의2가 몰려 산다.
맨 북쪽에 있는 「바바우」제도는 천연의 아름다운 해변을 지니고있어 남태평양에서도 절승으로 이름난 곳. 중간의 「하파이」제도엔 활화산 「토푸아」와 「카오」섬이 있다.
주민은 태평양지역 섬 주민 중 가장 오랜 토착문화를 갖고있는 「폴리네시아」인.
현재의 왕조가 1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전성기인 13세기에는 「통가」왕의 영향력이 「하와이」에 까지 미쳤으니 긍지를 가질 만도 하다.

<수공예품 솜씨 뛰어나>
그런 긍지를 증거 하듯 고색 창연한 토착문화의 유산이 섬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다.
이 아름다운 나라 「통가」의 주민들에겐 한말로 땅과 바다, 왕과 신이 생활의 전부다.
남자들은 들에 나가 야자·바나나·타로(토란의 일종) 등 농산물을 재배하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간다.
여자들은 주로 집을 지키며 대대로 전수 받은 기술로 돗자리·「타파」천(뽕나무 껍질을 통나무로 두드려 종이 뜨는 천을 만든다) 바구니 등을 만든다. 「통가」여인들의 수공예품 솜씨는 소문난 것으로 이 나라의 주요수출품이 되고 있다. 수도교외의 한마을에서 「타파」 천을 만들고 있던 여인은 『 「통가」여인이면 누구나 이것을 만들 줄 알지만 각각 독특한 무늬와 특색을 갖고있어 비슷한 것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근년까지 대외교류가 거의 없었던 이 나라는 아직도 고유의 전통문화와 관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의복도「투페누」또는「발라」라고 부르는 치마 같은 전통의상이다. 여기에 여자는 「키에키에」라는 허리장식을, 남자는 엷은 돗자리 같은 「타오발라」를 꼭 걸치고 다닌다.

<국교 있지만 교포 없어>
외출할 때 꼭 착용하는 것이 예절이라는 것.
또 공중이 모인 장소에 상의를 벗고 나타날 경우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한술 더 떠서 여자는 수영할 때도 옷을 입고 할 정도.
국왕과 귀족이 정치를 좌우할 뿐 아니라 토지소유권도 원칙상 국왕에게 속한다.
단지 모든 「통가」남자들은 16세가 되면 정부로부터 8.25「에이커」의 토지를 할당받고 이것을 생업의 기반으로 삼는다. 연간 4달러 정도의 토지세를 물면 되니까 자기 소유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제는 가계중심의 산업이 전부이며 수출용 야자「바나나」재배·가공 외에는 이렇다할 산업도 없다.
70년 9월 11일 한국과 국교를 연후 교민도 상주 공관도 없는 이 나라에 주 호주대사가 겸임대사로 일하고 있다. 교역의 여지는 적지만 75년에 전자기기류를 2만 달러 어치 수출한 실적이 있다.
교역상대는 지리적 역사적 사정으로 「뉴질랜드」·호주·영국·「네덜란드」등이 고작이며 최근 일본이 어업협정을 맺어 진출을 서두르고있다. 「통가」근해에는 풍부한 참치어군이 지나가고 있어 앞으로 어업은 전망이 밝다. 한국 원양어선도 「통가」해역에서 조업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수역에도 진출을 위해 제일먼저 「뉴질랜드」와 어로협정을 체결한 한국은「통가」와도 적극적으로 어업진출을 위해 접촉해야 할 것 같다.
국왕을 비롯한 국민의 90%이상이 기독교도라 일요일엔 모든 상가가 철시, 일체의 상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교육수준이 높아 문맹은 거의 없으며 14세까지는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의료는 정부가 맡아하며 개인병원이 없는 것이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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