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생활에 큰 전환 올 듯|폭은 넓을 듯… 수입 자유화의 충격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정부의 수입 자유화 조치가 15일 마침내 뚜껑이 열리면서 내용 전모가 드러났다. 1백33개 품목이 즉각 자유화되고 1백88개 품목은 82년까지 단계적으로 자유화한다는 이번 조처의 내용은 당초 예상보다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막상 이번 조처로 인한 금년 중 수입 증가 예상액은 2억「달러」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지만 일상생활과 직접·간접으로관련된품목의수입이개방된다는사실은업계의 이해관계를 떠나서도 소비생활의 변화를 가져오지도 모른다는 점에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배경>
정부가 무역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뜻하는 수입 자유화를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은 현실적인 면과 정책적인 면의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우선 정책적인 면으로는 국내 산업의 체질 강화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포스트」1백억「달러」 아래서의 수출 정책은 산업합리화를 통한 개개 상품별 국제경쟁력 강화에 두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내 산업을 무역 장벽이라는 온실에서 과감히 끌어내야 한다.
실력은 경쟁을 통해 배양되며 수입 자유화는 바로 이러한 경쟁 여건을 조성하자는 뜻이다. 정부는 82년까지는 단계적으로 개방 가능한 품목은 거의 모두를 자유화할 예정임을 이번에 밝혀 업계에 자극을 주고 있다.
또 하나의 요인은 국제 무역 환경에의 적응이다. 수입을 늘리지 않고 수출만 계속하면 각국의 대한 상품 수입 규제를 유발케 됨은 당연하다. 한국 상품에 대한 저항을 감소시키려면 우리로서도 수입 증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수입 자유화가 노리는 현실적인 효과는 국내 물가 안정과 해외부문에서의 통화 증발 상쇄다. 기획원 측은 작년 하반기부터 총 공급의 확보와 통화 환수를 위해 수입 확대를 계속 촉구해 왔다.
수입 자유화는 그 자체로 「인플레」심리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현실과의 조화>
수입 자유화는 그러나 위험한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자칫 국내 산업의 위축과 함께 국민의 사치 성향만을 자극할 우려도 없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연 수입을 개방할 정도로 외환 사정이 좋아졌고 국내 산업의 저력이 구비됐느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 최각규 상공장관은 외환 소비를 죄악시하는 고정관념,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선진국 제도로 가급적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두가지 고정관념을 조화시켜 나가는데 이번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농수산품·중소기업 제품·고급 사치품 등 저항을 가져올 소지가 있는 품목은 애초부터 자유화 대상에서 배제했다. 또한 수입 감시 품목 제도를 신설, 국내 산업과 경합이 되는 공산품은 이에 포함시켰다. 이들 품목은 자유화 이후 일정 기간 수입 동태를 주시, 외국산 선호도가 높을 경우 다시 수입을 제한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본 지역에서의 수입 편중 현상이 심화될 경우에도 이 제도는 안전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상공부는 업계와의 사전 협의 기간을 충분히 가졌으며 1단계 자유화만큼은 마찰을 극소화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예를 들어 가전제품의 경우 흑백TV는 소형, 전기 냉장고는 3백ℓ이상의 대형 등 경쟁력이 약한 규격은 자유화에서 제외했으며 그 대신 「에어컨」·「컬러」TV·전화기 등 기술 수준이 낮은 품목은 보호 체제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업계의 불만 소지를 없게 했다.

<전망>
이에 따라 이번 자유화는 수입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부품·독과점 상품·경쟁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수출 대종 품목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원자재의 경우 현행 수입 추천 또는 「링크」 한도제나 실수요자 제도 등이 모두 철폐되어 필요한 수량의 적기 확보가 가능해졌다. 관계 당국자는 종합상사의 수입 기능을 살려 가격 부침이 큰 원자재를 쌀 때 대량 비축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부문을 제의하고는 나머지 품목은 수입 개방이 되더라도 실질적인 수입 증대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공산품의 경우 정부는 관세율을 인상 조정해 주어 관세 장벽을 높일 예정이며 관세율 개정전까지는 탄력관세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특별법에 의해 수입이 실질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화장품·의약품 등 관심 품목이 법 개정 이후로 미루어진 것과 함께 이러한 보완 조치는 자칫 자유화 그 자체를 선전 효과에 그치게 할 공산도 없지 않다.
이러한 점은 탄력적인 정책 대응으로 조화를 이루어야겠지만 정부는 이 과정에서 대일 무역 역조를 시정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수출 환경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수입 자유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자유화에 따른 수입 증가는 수출 증진과 직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강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