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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 없는 문서사본은 문서 아니다 위조 사용 죄 성립 안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진기·복사기 등을 이용, 작성한 문서사본은 인증이 없는 한 문서로 볼 수 없으므로 이 사본을 위조하거나 위조사본을 사용했을 경우 문서위조 및 동행사 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 합의체(재판장 민복기 대법원장)는 14일 정봉우 피고인(26·서울 종로구 종로2가 56의8)의 공문서·사문서위조 및 동 행사사건 상고심 판결공판에서 이같이 판시, 정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 판결은 원본과 외관이 동일한 사본 등의 문서가 사회통념상 원본과 같은 정도의 신용을 갖고 통용돼 왔던 종래의 관행에 혼동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 것으로 참여 대법관 15명 가운데 8명은 무죄를, 7명은 유죄를 주장하는 등 논란을 벌인 끝에 결정된 것이다. 「뉴·아이템풀」출판사 대표인 정피고인은 75년 10월 모 여고에 예비고사문제집을 납품하면서 영업감찰이 필요하게 되자 한국「유니백」주식회사의 영업감찰을 복사, 이 사본의 영업자 성명·영업명·상호·납세번호 등을 자신의 명의로 고친 뒤 이를 다시 복사, 학교에 제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헌법에 규정된 공문서나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죄의 문서라 함은 작성자 명의인의 의사가 표시돼야 함은 물론 원본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사본은 인증이 없는 한 형법상의 행위 객체인 문서로 볼 수 없다고 원심파기이유를 밝혔다.
한편 소수의견은 최근 각 공공기관에서 사무간소화와 신속화를 위해 문서의 원본보다 복사문서를 요구하는 관행이 정착되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복사문서도 문서위조죄의 객체로 봐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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