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옥석동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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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S고 수학담당 H교사는 50분간의 수업을 3단계로 나누어한다.
처음 30분은 중간그룹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다음 10분간은 상위권이, 나머지 10분간은 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내용으로 진행한다.
각자 시간마다 한 문제씩이라도 머릿속에 남도록 애를 쓰지만 수업내용이 통일되지 않다 보니 스스로 혼돈을 일으킨다.
결국 진도는 늦어지기만 하고 몸만 피곤해진다는 푸념이다. 숙제를 내도 못해오는 학생들이 많아 못해와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3단계로 수업도>
서울 K고 1학년 P군은 평소 수업시간에 노상 존다. 영어를 가르치는 젊은 J교사는 계속 졸기만 하는 P군에게 주의를 주었다. P군은 그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듣는 체할 뿐 눈동자는 초점이 없다. 결국 J교사는 더이상 주의 주는 것을 단념했다.
그러나 정작 P군의 학기말고사 영어성적은 놀랍게도 유일한 만점.
『허공에다 대고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허탈감을 느꼈어요.』 J교사의 고백이다.
J교사는 지난해 11월 편지 한장을 받고 한참 당황했다.
자기반의 L군이 보낸 것으로 깨끗한 봉투에는 반듯한 글씨로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것이었다. 간단히 소개해 보자.
『…영어과목 때문에 고민하고 있읍니다. 도대체 영어시간은 괴롭기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 캄캄할 뿐입니다. 혹시 질문이라도 받을까봐 두렵고 고통스럽고….』
대략 이같은 내용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호소였다.
이 학생은 열심히 수업을 받는 학생 중의 하나다. 이 편지를 받은 후 J교사는 1주일에 사흘씩 방과후 특별지도까지 해봤으나 별로 성과가 없는 것 같았다. 워낙 실력이 달리는 학생이었다. 시간 중에 졸기만 하는 학생이 만점을 맞는 것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룬다. 양극이 나란히 앉아있는 수업이다.
『고교평준화 5년은 학력의 하향평준화만 가져왔다』고 H고 Y교사는 단정했다.
평준화이전 Y고 신입생의 평균지능지수는 1백20이던 것이 그후에는 1백6으로 낮아졌다. 그만큼 평가절하 된 것이다.

<이질집단의 모임>
『지능지수가 78에서 1백48에 이르기까지 격차가 심하다보니 학생들끼리도 좀처럼 융화가 안돼요. 수업시간이 항상 들떠있는 것은 물론 학교전체의 분위기도 왠지 불안한 느낌입니다. 쉬는 시간에 자습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요. 토큰이나 동전으로 노름하는 등 수라장입니다.
흡연은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으로 비행학생들이 무척 늘었읍니다. 그레셤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동질이 아닌 이질집단이 모이다보니 항상 말썽이 꼬리를 물고있다고 C교사는 걱정했다.
서대문구의 어느 사립교장 K씨의 말은 아주 심각하다.
『고교1학년의 학력차이는 대략 6개 계층으로 나눌 수 있어요. 중학1년 수준이 있는가하면 고3정도의 실력을 갖춘 학생까지 있읍니다. 이같은 학생들을 데리고 어떻게 수업을 합니까. 교사들은 고통스러운 수업을 하고 있어요.』
Y고에서 지난해에 받아들인 신입생들은 50%이상이 알파벳을 쓰지 못했고 그중 절반은 중1수준을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측은 이들을 위해 보충수업을 실시하며 나머지 학생들의 진도까지도 늦추는 둥 법석을 떨었으나 한 학기가 지나도록 지진아들의 성적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아 지쳐버렸다고 했다.

<면벽수도의 고행>
더구나 상급반으로 올라갈수록 수업은 대학입시를 겨냥하게 돼 학교마다 30%가량 처지는 학생들이 생긴다. 이들 지진아들은 심하게 말해 3년간 면벽수도의 고행(?)만 하다가 졸업하고 만다.
명문사립고교의 Y교사는 『학교측이 큰 손해를 봤다』고 설명한다. 명문의 전통이 사라진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해도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 학력고사에서 60점 이하가 3분의2가량 되고 보니 『수업에 들어갈 맛이 안 난다』는 것.
반마다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 학교의 경우 예비고사에서도 과거에는 90%이상 합격했으나 요즈음은 65%선이 고작.
중간수준을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낮은 학생들은 못 알아들어 쩔쩔매고 우수한 학생들은 흥미를 잃어 자연히 과외나 학원으로 눈을 돌리게된다. 교사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듣는 체 한다는 것. 요즈음 마치 열병처럼 번창하고있는 과외나 학원강의도 결국은 평준화의 부산물이라는 진단이다. 과외의 평준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보충수업 충실히>
『우수한 학생들이 수업을 외면하는 것까지는 감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수업이 재미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사들을 불신할 때 교육자라는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B고 S교사의 한탄이다.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에 질문도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과거의 수업이 아니다. 그래서 교사들까지도 수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보통.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옥석이 한자리에 모인 교실은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어쩔수 없이 교육자의 양심이 다시 들먹거린다.
D고 K교장. 『보충수업을 보다 충실히 하는 등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교육자들이 얼마나 성의를 갖고 학생들을 보살피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전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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