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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판화 교류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는 완전히 복수문화 속에서 살고있다. 가령 수백만명이 넘는 본지독자는 매일같이 똑같은 정보를 나눠 갖고 있다. 텔리비전 시청자는 또 똑같은 드라머를 즐겨본다.
그뿐이 아니다. 현대의 문명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복수화 시켜가며 있다. 한 장의 네거·필름으로 수없는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서울과 부산 뉴욕이 동시에 똑같은 영화를 상영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책 포스터 디스크 등등…. 결국 우리는 날이 갈수록 오리지널과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판화란 이를테면 이런 복제문화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미술이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판화 붐은 세계적이다.
『내가 2년 전에 10프랑으로 산 판화가 65프랑이라니! 이놈저놈 할것 없이 다 미쳤군 그래…』
공쿠르 형제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만약에 그들이 1백년 후의 오늘에 되살아났다면 뭐라고 했을까….
보날의 판화 『크리시 광장』은 지난 14년 사이에 값이 38배나 뛰었다. 고야의 『카푸리초스』는 20년 사이에 35배나 뛰었다. 그 사이에 보통 물가는 4배밖엔 뛰지 않았다.
판화의 매력은 바로 그 복수성에 있다. 피카소의 유화를 살만한 여유가 없는 미술애호가도 판화는 능히 살수 있다. 값이 2백50분의 1내지 50분의1정도로 싸기 때문이다.
복제예술은 어느 것이나 지극히 몰인간적이다. 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개인적인 입김의 교류란 전혀 있을 수가 없다.
판화는 그렇지가 않다. 『판화는 수표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서명이 있어야 비로소 통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이러한 말처럼, 오리지널 판화에는 반드시 작가의 입김이 담겨지기 마련이다.
매스·미디어는 매스·컬처(대중문화)와 통한다. 그런데도 판화는 그렇지가 않다. 끝없이 확대·심화되어 가는 판화기술은 현대미술의 세계를 더욱 넓혀주는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서울현대미술관에서는 본사 『계간미술』지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공동주최하는 서울국제판화교류전이 열린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국적을 달리하는 화가 1백명의 작품 2백여점을 한눈에 보면서 세계가 그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세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각국의 특이한 민족성은 역력한다. 참으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다』는 지드의 말을 실감하게 하는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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