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에 대한 편견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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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운명이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손을 내민다. 우연한 만남, 뜻밖의 사건으로 삶의 행로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는 법이다.

연극배우.뮤지컬 연출자.월간 '객석'대표…. 28년간 연극.뮤지컬 무대의 최고 스타로 군림해 온 윤석화(47)씨가 중대 결정을 내렸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유명인사일수록 선뜻 선택하지 못했던 입양(入養)을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입양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3일 오후 서울 강남 윤씨 자택. 낯익은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탤런트 김희애씨를 비롯해 이영애.노영심씨 등이었다. 윤씨가 '베이비 샤워(임신이나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임)'행사를 위해 평소 절친한 이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 임신은 아니었다. 윤씨가 이날 입양 관련 기관에서 아기를 데려온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언니, 너무 축하해요"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전날 꼬박 밤을 샜다는 윤씨의 입도 내내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요. 하늘이 주신 선물 같아요. 정말 잘 키울게요. 잘…."윤씨의 말은 기쁨의 눈물로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정말 소설 같은 일이었다.

지난달 20일 윤씨의 등엔 생후 5개월된 여자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SBS '스타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연출 주철환 이화여대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에서 일일 위탁모(양부모에게 인계되기 전까지 아기를 돌보는 사람)역할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 윤씨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내일이면 이역 만리 미국 애리조나로 떠나는 아기를 위해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맙다. 천사 인형 우리 아기. 예쁘게 자라서 꼭 다음에 만나자…."

그때 윤씨 머릿속에 한 남자 아기의 얼굴이 스쳤다. 이날 오후 입양 기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유독 한 아기가 심하게 울어댔다. 간호사들이 달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윤씨가 이 아기를 안아들자 바로 울음을 그치는 것이 아닌가. 아기는 윤씨에게 배냇짓까지 해 댔다. 태어난 지 2주가 갓 넘은 '찬민'이였다. 윤씨는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윤씨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위탁아와 헤어진 뒤 곧바로 입양 기관을 찾았다. 입양 절차를 알아본 그는 구두로 찬민이를 입양할 뜻을 밝혔다. 남편과도 "잘 키우자"고 약속했다. 얘기를 들은 입양기관이 환영한 것은 물론이다.

스타와 사회명사들이 앞장섬으로써 국내 입양이 활성화될 지 모른다는 기대에서다. 지난해 총 4천59건의 입양 중 국내 입양은 1천6백94건(41.7%). 2001년 1천7백70건에 비해 오히려 줄었고 3~4년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윤씨는 그리고도 며칠을 더 기다렸다. 일시적 감정이 아닌가 해서였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누구보다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윤씨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3일 찬민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동료들이 돌아가고 난 뒤 윤씨는 찬민이 옆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행복했다.

"바쁘다고 육아를 소홀히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대신 아이를 위해 조용히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인터뷰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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