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근해 어업의 낙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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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연 근해 어업발전을 위해서는 천혜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업·농업부문이 눈부신 성장과 체질 개선을 이룩해 가고 있는데 비해 연 근해 어업은 규모의 영세성과 기술의 낙후, 제도의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 정체된 부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에 집계한 정부통계에 의하더라도 연 근해 어선 6만6천여 척 중 97%가 20t미만의 작은 어선이고, 특히 그 70%정도는 2t미만의 무 동력선이다.
2t짜리 배라면 5∼6명이 탈 수 있는 거룻배로 어선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조각배다. 게다가 어민의 57%는 이런 거룻배조차 없는 형편이다.
또 어촌에서는 제법 큰배라고 하는 10t이상 동력선 중에도 무전기·어탐 기 등 조업과 안전을 위한 현대장비를 갖춘 배는 고작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아무 장비도 없이 전근대적인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한다.
이밖에도 영어자금 부족으로 고리의 사채가 성행하고, 자기 배가 없는 어민들은「보합 제」라는 불합리한 임금제도를 감수하여 남의 배에 타야 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어민의 소득수준은 농가소득이나 도시근로자소득수준의 70∼80%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 근해 어업이 이처럼 다른 산업부문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낙후·정체된 원인은 한마디로 이 부문이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과 투자배분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 성장단계로 접어든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 중 어선건조를 위해 투입된 투융자 규모는 77억 원, 제3차 계획기간 중에는 이보다 적은 73억 원에 불과했다.
동력개량·장비개량을 위한 투자실적은 각각 5억∼10억 원 수준을 맴돌았다.
영어자금 융자실태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73년의 경우 추정소요자금 2백57억 원의 15%인 46억 원, 76년에도 추정소요자금 50%에도 못 미치는 2백28억 원 정도에 그쳤다.
이 같은 실정 하, 이 자리에서 과거의 잘못을 따지는 것만을 가지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 불가피하게 절름발이가 된 부문이 어찌 연 근해 어업 하나뿐이겠는가.
그러나 영세어민의 문제는 수산자원개발이라는 관점에서나 계층간·직종간 소득불균형 시정이라는 관점에서나 또 귀중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라는 관점에서나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해부터 연 근해 어업진흥 5개년 계획에 착수하는 등 뒤늦게나마 이 부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81년까지 5년간 어선 건조 비로 7백46억 원, 장비개량에 1백28억 원, 어항시설에 4백99억 원 등 모두 1천9백60억 원을 투입할 것이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정도의 지원과 투자로 낙후된 연 근해어업과 영세어민의 생활조건이 개선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금 어민들은 저소득∼저 투자∼저 생산∼저소득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려면 이 정도의 미온적인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도 관심을 표명했듯이 자금지원의 규모를 더욱 늘리고 융자조건을 좀더 장기 저리로 완화하여 크고 좋은 시설을 갖춘 배를 타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어항시설을 보완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며 기술지도사업을 확대하여 어민의 소득을 극대화하는데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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