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이상의 시련 겪는 방동선씨 미 의회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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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박동선씨는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 지난2월26일「워싱턴」에 도착했다.
그가 그렇게 두려워한 사태는 증언 이틀째부터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윤리위조사관들의 질문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윤리 위 소속 의원들은 박씨의 대답이 진보 성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증언의 3일째를 맞았을 때 적어도 다섯 사람의 의원들이 박씨가 지금 성의 있는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표명하여 박씨를 긴장시켰다.
박동선씨에 대한 36개 죄목의 기소가 면제되려면 박씨의 법무성 및 의회에서의 증언이 진실한 것이라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에 윤리 위 소속 의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그것은 박씨에게는 심각한 문제라는 신호가 된다.
물론 증언은 비밀로 하기 때문에 아무도 증언내용까지 예로 들면서 박씨의 증언태도에 대한 인상은 소속의원들이 기자들에게 비공식으로 표명하는 형식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일종의「프레스·캠페인」이다. 그런 점을 알아차린 박씨는「프레스·캠페인」을 한층 간과하고 있는 눈치다.
첫날과 두 번째 날에는 점심때 기자들이 있는 쪽을 거들떠보지 않던 박씨가 지난 목요일에는 기자들 앞으로 와서 일부의원들이 자기의 대답을 가지고『미꾸라지 같다』고 한 것은 유감이라고 전제하고 자기로서는 그들을 만족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의 말만을 일반적으로 믿지 말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러나 언론을 자기편으로 휘어잡으려는 박씨의 안간힘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같이 보인다.
미국언론과 윤리 위 소속 의원들은 그들 자신의 자(척)를 가지고 박씨 증언의 성실성여부를 재고 있다.
박씨가 자기는 과연 한국정부의 하수인으로 막대한 돈을 뿌렸었다고 대답하면 그것은 진실성 있는 대답이 되고 박씨가 자기는 어디까지나 사업가의 자격으로 아는 친구들에게 정치적 헌금을 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척도에서 보자면 무조건 낙제인 것이다.
쉬운 예의 하나로「워싱턴·포스트」지의 지난 수요일자 보도를 보면 된다. 이 신문에는 박씨가 이제는 신용을 잃고 있다는 말을 하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박씨는 개인자격으로 미국관리들을 접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리 위에 출두했던 다른 증인들의 말을 들으면 박씨는 정부를 위해서 일을 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말하자면 김형욱이나 김상근의 말은 사실이고 그들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는 박씨의 증언은 사실일 수가 없다는 특이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2일부터는「재워스키」의 질문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박씨가 동문서답을 한다 싶으면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궁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은 한 인간으로서의 박동선에게 여간 고된 시련이 아니다. 그가 그런「스트레스」를 얼마나 오래 견뎌 낼 지가 문제다. 아직은 억지웃음이라도 띠고 있지만「재워스키」와「스트레스」의 연합군에 굴복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박씨의 처지가 어려운 것은 당초부터 서로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미 의회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 때문이다.
아직은 증언초기라 그런지 미국신문들의 관심은 상당하다. 증언의 현장부근에는 여전히 기자들이 서성대고「뉴욕·타임스」와「워싱턴·포스트」는 사실보도를 하는 기사 말고도 해설을 한번씩 실었다.
특히「뉴욕·타임스」는 금요 판에 박동선의 「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을 새삼스럽게 길다랗게 싣고 박씨의「워싱턴」 집에 있는「스테레오」장치가 3만2전 「달러」짜리라고 하여 독자들에게 겁을 주었다.
「피아노」는「워싱턴」에서 가장 좋은 것이고 값진 골동품과 수많은 보석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3만2천「달러」짜리「스테레오」를 말이라도 들어본 미국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지 궁금하다.
「워싱턴·포스트」는「헤인즈·존슨」이라는 거물기자가 쓴 현장「스케치」비슷한 것을 금요 판에 실었다.
「존슨」은「레이번·빌딩」밖에는 벌써 일본벚꽃이 움을 트기 시작했고 그「빌딩」안에서는 동양에서 온 다른 한 송이의 꽃이 만발하고 있다고 풍자했다.
기사말미에 가서는 박씨가 기자들에게 말끝마다 『잘 봐 달라』고 하는 것을 받아서『박동선은 우리를 사랑한다』『우리가 그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특히 그는 우리에게 그렇게 신나는「쇼」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꽈배기처럼 비비꼬아 놓았다.
지난26일 박동선은「워싱턴」의 국제공항에서『1년 반만에 오는「워싱턴」이 적진 같은가 내집 같은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지요』가 그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입술과 손은 떨고 있었다. 적어도 미국의 분위기를 가지고 말하자면 박씨가 저지른 잘못은 근본적으로는 미국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그는 돈과 사치라면 오금을 쓰지 못하는 미국사람들의 약점을 이용, 미국사람들의 위에 군림하여 그들의 우월감에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그는 세월 좋을 때 미처 몰랐던 교훈을 지금에서야 배우고 있다. 그것은 미국사람들의 보복은 처절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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