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프랑스」소설기법에 새 경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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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섭일 트파원】77년은「프랑스」에 새 철학운동의 물결이 일어난 한해였다면 78년은「프랑스」문학에 새로운 문학운동이 태동되는 해가 될 것 같다.「누보·로망」이 50년대 후반에 고개를 들기 시작, 60년대 주류를 이룬데 비해 70년대는 뚜렷한 경향을 보이지 못한 반공백기였다.
그러나 금년 초에 출판된「밀로바노프」의『움직이는 성채』,「베네제」의『모조품』, 「에스타제」의『백의 이야기』등 3권의 장편소설이 비평가들에 의해 새로운 문학운동의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지적되었다.
『움직이는 성채』가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전개시켜 가는데 비해 『모조풍』과『백의 이야기』는 모든 계속적인「스토리」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독백·추억·시·짤막한 이야기·「노트」·단편적인 언어 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모조품』이 직접적이며 강렬한 언어들이 구사된 반면『백의 이야기』는 보다 신비적이며 모호한 표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소설의 개혁을 위해서 먼저 시를 갖고 문제를 제기한 것 같다. 『모조품』에는 지난 세기말 상징주의 시의 거장「말라르메」와 「보들레르」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장면은 이야기로 바뀌며 인물이 등장한다. 「누보·로망」이 최초로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자유를 부여했다면 이들은 작중인물들뿐만 아니라 동시에 작가에게도 그와 같은 자유를 행사하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움직이는 성채』는「로브·그리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으나「누보·로망」의 고전인『질투』와 다르다.「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중단되며 장면이 뒤바뀐다. 마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밀로바노프」의 작품은 대문자·구두점 등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형식면에서도 가히 혁명 성을 지니고 있다. 『따르라기』가 다시 따닥따닥소리를 낸다. 「커튼」이 열린다. 여자는 환등기 밑에서 잠들다….』로 시작한『움직이는 성채』는 마치 한편의「프랑스」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모든 장면들이 영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작품이 세계의 인간의 행동 욕망 감정 꿈 고민들의 환영을 재현했는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예지「누벨·리테레르」가 서슴지 않고『78년「프랑스」의 작가들』로 꼽는 이유가「누보·로망」이후의 새로운 경향을 이들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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