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대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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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0여년전 「이스라엘」대사와 잠시 만난 일이 있었다. 대사관이래야 서울 충정로의 허름한 2층 집. 직원도 「타이피스트」이자 비서인 한국 여성 한 사람이 전부였던 것 같다. 이쪽은 「이스라엘」의 「키부츠」제도에 관해 몇 마디 물어볼 생각이었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그 단순한 인연만으로 오늘까지 갖가지 「블리틴」(간행물)을 보내 주고 있다. 주소가 바뀌어도, 직장과 부서가 달라져도 어떻게 소재를 알아내는지 「블리틴」은 잊지 않고 찾아온다고
10년이 지나도, 필경 앞으로도 그 그림자와 같은 「블리틴」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유대인의 나라는 어딘지 다른 데가 있다. 아마 「이스라엘」대사관과 인연이 없어도 그런 「블리틴」을 받고 있는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철책 외교」랄까, 「억척외교」랄까, 그 은근하고 끈질긴 자세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16년 동안 줄곧 한결 같았다.
「국가이익」의 상위은 그만두고 우선 그 끈기와 집념에는 탄복할 뿐이다. 하긴 『유대인의 상술』이란 말까지 있지 않은가.
요즘 미국과 「이스라엘」은 잠시 소원한 인상을 준다.
「사다트 선풍」에 휘말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만히 앉아 있을리가 없다. 어느새, 「모세·다얀」외상은 「워싱턴」으로 날아가 그 나름의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위로는 「카터」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신문기자에 이르기까지 두 팔을 걷고 설득에 나섰다.
벌써 「다얀·토나도」라는 말까지 있다던가-.
각설하고-, 「처칠」이나 「네루」만큼 외교를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도 드물었을 것 같다. 줄곧 동도 서도 아닌 그 나름대로 특유의 외교를 구사했던 「네루」가 한말이 있다.
『결국 외교 정책은 경제정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도가 적절히 경제정책을 진전시킬 때까지는 그 외교 정책도 막연하고 미완성이며 모소적일 수밖에 없다』그의 논문 『인도의 외교정책』에서 주장한 「네루식 외교」의 방향이다. 「네루」는 어쩌면 그렇게 오늘을 꿰뚫어 보는 말을 미리 했었는지 모르겠다.
『막연하고 미완성적이고 모소적이고….』이 말은 중동의 현실을 놓고 보면 모든 나라들이 저마다 인용하고 싶은 명언 같다. 「처칠」수상은 그러기에 외교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했었다.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서로 칭찬을 나누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편의를 확보해두기 위함이라고』 「이스라엘」정부의 주한 대사관 폐쇄조치를 보며 새삼 외교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마음의 외교」와 「주판의 외교」사이엔 차가운 현실이 있으니 말이다. 특히 「론」대사와의 친교를 맺은 한국인의 심정은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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