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법 무시한 '채팅 언어' 교실까지 번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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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려고 집에서 퇴장했다고? 이게 무슨 소리니?"

서울 S초등 5학년 담임 이선영(38.여)씨는 한 여학생의 작문 숙제를 읽다가 어리둥절했다. 인터넷 접속을 끊는 걸 '나간다'또는 '퇴장한다'고 하듯 '집에서 나왔다'를 '집에서 퇴장했다'고 표현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학생의 대답에 더욱 당황했다.

李교사는 "원고지에 쓰는 작문에도 웃음소리를 'ㅋㅋㅋ'로 쓰는 건 예사"라고 말했다. 온라인 용어가 어린이들에게 퍼지면서 표준 어법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K초등 5학년 3반. 지난달 받아쓰기 시험에서 만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겸허한'을 '겨머안'으로, '멋쩍은'을 '머쩌근'으로 쓰는 등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거나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온라인식 표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언어가 국어 체계를 흔들고 있다. 온라인 언어는 문자 입력 시간을 줄여 통신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이멜(e-메일).즐팅(즐겁게 채팅하세요) 등 압축어를 쓰면서 등장했다.

K고 2년 金모군은 "어렸을 때부터 통신 언어를 써왔기 때문에 어떤 표현이 어법에 맞고 틀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어파괴는 문어(文語)뿐 아니라 일상적인 구어(口語)에서도 나타난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宋모(37.여)씨는 "아이들이 게임 사이트에서 쓰는 말이라면서 '즐'(너나 즐겁게 해라) '어쩔'(어쩌라구) 등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이영근(李永根.30)씨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얘기할 때도 '허걱''헐' 등 '온라인용' 감탄사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특수기호를 입력하는 이른바 '외계어'까지 등장했다. 己ㅣ(리).0よ(안).ⓔⓨⓞⓤ(이유).二卍(이만).雨녕댜(운영자) 등이 그 예다. 중학생 車모(12)양은 "특수문자를 사용해 글을 쓰면 예쁘고 멋있다"면서 "인터넷에서 외계어를 안 쓰면 왕따를 당한다"고 말했다.

'머…ㆀ우리잘못이있긴하쥐만…ㅊ~~글애두예전에그모습-ㆀ…'(D초등 5학년 李모양의 일기) '…수업이 끝났따. 친구를 만났따'(A초등 6학년 문집)에서처럼 특별한 의미 없는 장식용 기호(ㆀ)도 유행이다.

이정복(李正福) 대구대 국문학과 교수는 "온라인 언어가 ▶일종의 암호를 만들고 해독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사용자들 사이에 동류(同類) 의식을 높이며▶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 학생들에게 널리 퍼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언어파괴 반대 운동도 활발=인터넷 언어를 많이 쓰는 10대 네티즌들의 자정(自淨) 노력도 활발하다. 강진향(姜眞香.17.수도여고3)양은 2001년 10월부터 회원수 3천여명의 '언어파괴를 반대하는 사람들'(cafe.daum.net/antioutside)을 이끌며 바른말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10대 포털 사이트 '아이두'가 시작한 '외계어 추방운동'(http://lag.idoo.net)엔 4만여명이 동참했다. '듀얼메인보드사용자모임'(http://2CPU.co.kr) 등 게시판에서 온라인 언어 사용을 금지하는 사이트들도 생겨났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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